오래전부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사도신경과 십계명, 그리고 주기도문을 신앙의 기본으로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당장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할 때만 하더라도, 아직까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미처 우리말로 다 번역되기 전부터 신앙의 요지를 가르치기 위하여 이 세 가지 요지들을 먼저 번역해서 가르쳤습니다. 고대 교회에서는 사도신경과 주기도문만 먼저 가르치다가 13세기에 와서 십계명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개혁 이전에는 항상 사도신경-주기도문-십계명 이 순서로 가르친 셈입니다. 이렇게 가르칠 때의 의미는 ‘실천’ 또는 ‘적용’의 순서를 따른 것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우리가 믿는 바 신앙의 요지를 정리하고, 이 정돈된 신앙의 요지는 ‘기도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즉, 사도신경-주기도문의 연결은 ‘바르게 믿고-구한다’라는 순서를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여기에 ‘십계명’이 덧붙여집니다. 십계명은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또 무엇을 싫어하시는지를 알아, 우리의 삶으로 우리의 신앙을 구현하는 것이 십계명의 취지입니다.
윤석준 – 참된 신앙을 위한 세 하모니: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
자기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곤고한 상황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고난의 때, 길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도 히스기야처럼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려야 한다. 철저히 무력한 채 하나님 앞에 엎드린 히스기야처럼, 우리도 하나님만 붙잡으면 산다.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하는 자를 이길 자는 이 땅에 아무도 없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도 이사야가 살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만 주님을 모르는 사람이 4천만 명이 넘는다. 또 교회에는 미지근한 성도가 얼마나 많은가. 따라서 이 시대에도 이사야가 전한 말씀과 동일한 메시지가 선포되어야 한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본연의 삶을 살라는 권고,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 불에 떨어진다는 경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 되시고 그분 안에만 참 구원이 있다는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
박영덕 – 삶으로 설명한 신앙 마지막 이야기
우리가 죄를 떨쳐내지 못하는 공통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에 관한 축소된 관념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기독론은 비정통이 아닌 정통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와서 우리는 절대로 살 수 없는 삶을 살다가 우리가 받아야 할 죽음의 형벌을 대신 당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믿고, 고대의 신조에 따라 그분이 참 하나님이요 참 인간이시라고 고백한다. 우리의 교리는 비정통이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교리적인 정확성에도 불구하고, 길들여진 관념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속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형편없이 작아지고 말았다. 간단히 말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지 못하면 변화될 수 없다. 특히 예수님이 지극히 온유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일평생 그분의 온유하심 속으로 더 깊이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의 참모습을 발견하지 못하면 남는 대안은 오직 하나, 곧 쳇바퀴를 굴리는 삶으로 되돌아가서 최선을 다해 예수님을 존중하고 따르려고 노력하며, 우리가 실패할 때마다 그분의 은혜와 자비의 비축량이 조금씩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면서 은혜가 다 소진되기 전까지 일평생 힘써 달리다가 죽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데인 C. 오틀런드 – 더 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