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지 78주년이 되는 광복절이다. 일제에 빼앗겼던 나라의 영토와 주권을 도로 찾았다는 의미에서 ‘빛’ 광(光)자에 ‘돌아올’ 복(復) 자를 써서 ‘빛을 되찾다’라는 의미로 ‘광복절’이라 부르게 됐다.
8.15 광복절이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먼저 이날은 우리의 힘과 의지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3.1만세운동에서 시작된 우리 민족의 자유를 향한 뜨거운 갈구가 독립운동가들의 용단으로 이어져 일제의 무단통치에 끝까지 저항한 건 맞지만 그건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8.15 광복은 당시의 세계 질서와 정세를 주도한 주요 연합국이 나치 독일과 일본의 제국주의를 굴복시키면서 우리가 그 덕을 본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8.15 광복의 의미를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어떤 의미에서 당시의 국제 질서, 즉 힘의 재편은 거대한 흐름이었으나 한반도를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의 곁가지에 불과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는 조선 왕조 500년, 그 이전의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까지 수 천년간 군주가 통치하는 전제주의 국가 형태였다. 지정학적으로 오랜 기간 숱한 외세의 침탈을 겪었으며 불과 100여 년 전에도 일본과 러시아, 중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세계열강의 먹잇감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런 힘없는 나라를 전 세계가 주목하게 된 역사적 기점이 바로 1890년대 미국 선교사들의 내한이다. 이들이 미지의 백성에게 전한 복음의 핵심이 자유와 평등, 박애였다는 점이다. 이들 선교사들을 통해 일본의 조선 침략에 대한 부당성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나라를 빼앗긴 백성의 울분과 좌절을 자주 독립의 소망으로 승화시킨 건 선교사들이 전국에 세운 기독교회들이었다.
한국교회 각 연합기관들은 8.15 광복 78주년을 기념하는 메시지에서 한결같이 “8.15 광복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 했다. 그건 미국 선교사들이 전해준 복음이 이 땅에 뿌리내리며 교회 지도자들이 순교를 각오하고 저항했고 마침내 빼앗겼던 우리 땅과 주권을 찾았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건 하나님의 은혜가 단지 8.15 광복, 즉 잃었던 나라를 되찾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사건을 기점으로 이 땅에서 전제주의 국가가 끝나고 자유 민주주의국가로 전환하게 된 건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75년 전 광복절에 대한민국이 탄생하게 된 건 일제에서 벗어난 ‘광복’ 못지않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다.
이 시점에서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 건국일에 대한 논란이다. 이 문제는 그동안 진보·보수 진영 간에 시각 차이가 극명했다. 진보진영이 1919년 3.1만세운동을 시점으로 보는 반면에 보수진영은 1948년 8.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을 건국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는 헌법에 명시한 대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1919년부터 계승돼 왔다는 인식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1948년 8.15를 대한민국 건국일로 보는 시각에 비교적 신중한 입장이다. 이유는 독립운동이 국민이 주인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었다는 점에서 1948년 건국론을 인정하면 역사의 지속성이 단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1948년 7월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헌법이 공포되고 이어 8월 15일에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조직을 갖춘 대한민국이란 주권국가의 출범을 전 세계에 공표한 만큼 1948년 8월 15일 건국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란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논란 속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독립유공자 및 유족 158명과 8·15 광복절 기념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우리의 독립운동은 단순히 일제로부터 빼앗긴 주권을 찾는 것만이 아니었다”며 “국민이 주인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었다”고 말했다. 건국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대한민국 역사의 연속성에 의미를 부여한 건 이런 논란에 일종의 타협점을 찾으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일제에 항거하며 ‘조선’이 아닌 국민이 주인인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운동이 1919년에 시작된 건 그 자체로도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새로운 나라가 본격 출범한 게 1945년 8월 15일이었다는 역사적 사실 또한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머물러있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속성을 가지고 맞닿아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1919년과 1948년은 서로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건 하나님의 뜻 가운데 1919년에 잉태된 대한민국이 마침내 1948년에 탄생했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정체성마저 부정한다면 그건 그냥 소모적 논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