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부안 새만금 야영장에서 지난 1일 개막한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부실한 운영으로 국제적 눈총을 받고 있다. 영국과 미국 대표단이 조기 철수한 데 이어 태풍 ‘카눈’의 피해를 우려해 대회 폐막을 5일이나 남기고 참가자 전원이 대회장을 떠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참가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등 선행에 나선 한국교회가 한 줄기 빛이 됐다.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세계스카우트연맹이 4년마다 개최하는 전 세계적인 청소년 야영 축제 다. 전 세계에서 온 청소년과 지도자들이 텐트에서 야영생활을 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교류와 우애를 나누는 세계 최대의 청소년 교류 행사로 이름나 있다. 특히 이번 대회는 전 세계 158여 개 회원국에서 4만3천여 명의 청소년이 참가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그런 잼버리 대회가 도마 위에 오른 건 대회 개막 후 연일 계속된 폭염으로 1,000여 명의 온열 질환자가 발생한 데다 야영장 운영과 시설 관리 등 총체적인 부실이 원인이 됐다.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땡볕을 피할 그늘 하나 없는 환경도 문제지만 화장실·샤워장 등 기본적인 시설조차 열악한 상태로 국제행사를 개최한 게 역대 최악의 잼버리라는 악몽이 되고 만 것이다.
날씨는 애초 대회 장소가 새만금으로 결정됐을 때부터 지적된 문제였다. 간척지 특성상 뜨거운 태양을 가려줄 변변한 그늘이 없다 보니 폭염에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는 대회 조직위가 1년 전에 ‘프레 잼버리’를 열어 사전 점검했어야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대충 넘어간 것이 오늘의 사태를 키웠다고 본다.
‘새만금 잼버리’는 2014년부터 전라북도가 추진해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8월 개최가 확정됐다. 현 정부에서는 여성가족부가 행사 추진을 맡았다. 그런데 대회 개막날까지도 서로 공치사를 늘어놓기 바빴던 여·야 정치권이 문제가 터지자 반대로 서로 네 탓 공방이나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대회 준비 기간 6년에 1천억 원 가까운 국비가 들어간 국제행사가 이토록 허술하고 부실했던 건 정부와 지자체, 여야 정치권 할 것 없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장소와 날짜가 정해졌을 당시부터 무더위와 태풍, 호우로 인한 자연재해가 우려된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그런데도 자연재해와 안전사고에 대한 변변한 대응 매뉴얼 하나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대회를 치르려 했다는 점에서 인재(人災)라고밖에 할 수 없다.
결국, 폭염에 부실한 운영, 태풍 우려까지 겹치면서 잼버리 대회 참가자 전원이 대회장을 떠나는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이는 세계스카우트연맹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야영장 철수를 요청한 것을 대회 조직위가 수용한 것이지만, 이대로는 대회를 끝까지 치르기 불가능하다는 자체 판단이 더 컸다.
8일부터 본격적으로 야영장을 떠나기 시작한 150여 국 잼버리 참가자들은 서울 등 수도권으로 이동해 폐막 때까지 문화체험 활동 등을 계속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서울 등 수도권 대학 기숙사, 기업체 연수 시설, 체육관 등을 참가자 숙소로 지원하기로 하는 등 비상 계획 마련에 분주다.
한국교회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모습이다. 대회 인근의 지역 교회들은 참가자 철수가 결정되기 전부터 교회 공간을 참가자들의 숙식을 위해 기꺼이 내놓았다. 한국교회총연합은 참가자들이 수도권으로 이동한 후 편히 머물 수 있도록 각 교회가 운영하는 기독교 수양관과 청소년 수련원 실태 파악에 들어갔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대형교회들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다양한 시설을 앞다투어 안식처로 내놓고 있다.
교계가 기독교 행사가 아닌 ‘잼버리 대회’ 지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건 정부의 요청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150여 개국에서 온 청소년들이 처한 어려움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미래세대에 한국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심어줘선 안 되겠다는 인식도 작용했다고 본다.
세계적인 청소년 축제가 부실한 운영으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뻔한 위기 속에서 종교계와 기업 등이 ‘잼버리 살리기’ 구원투수로 나서게 된 건 그나마 다행이다. 각국 청소년들도 비록 야영장에서 추억 쌓기가 무산돼 아쉬움이 크겠지만 색다르고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을 체험하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한국교회는 국가적인 재난 현장뿐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 위기가 닥쳐도 마음을 모아 극복하는 저력을 발휘해 왔다. 선행은 크든 작든,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상관이 없다. 때론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모금 주는 것으로 족하다. 오늘도 사회 곳곳에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 하시고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10:8) 하신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에 든든하고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