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설리번’이 ‘아동학대범’이 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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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으로 교권 추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장애아를 담당하는 특수교사를 학부모가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당사자는 웹툰 작가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주호민 씨로 주 씨는 최근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들을 지도해온 특수교육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그런데 주 씨가 자신의 아들을 학대했다며 경찰에 교사의 음성이 담긴 녹취를 증거로 제시한 게 문제가 됐다. 아들이 등교할 때 가방에 녹음기를 켜 보냈다는 건데 교사의 지도와 훈육을 불신해 몰래 녹음을 한 것이 학부모로서 적절한 행동이었는가 하는 걸 놓고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학부모로서 금도를 넘었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주 씨는 1차 입장문을 내 “초등학교 2학년 발달장애 아동 특성상 정확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확인이 필요했다”며 녹취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녹음 안에 교사의 단순 훈육으로 보기 어려운 내용이 있어 부득이 법에 호소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이 정당하지 못한 방법에 대한 비난 여론만 키우는 모양새다.

해당 교사는 교사직에서도 해임되고 검찰의 기소로 재판을 받는 처지가 됐다. 최근 이 교사가 작성한 경위서 내용이 공개됐는데 “학부모의 끊임없는 요구사항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소통하려 노력했다”면서 “특수교사라는 사실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심경을 밝혔다.

학부모로서 주 씨가 한 행동이 과도한 교권 침해란 논란 또한 거세다. 최근 초등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사건의 원인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 때문이란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주 씨의 행위 역시 이 범주 안에 있다는 지적이다.

해당 교사의 사건을 옆에서 지켜본 다수의 동료 교사들은 주 씨의 아들이 지난해 여학생에게 성기를 노출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해당 교사가 책임지고 모든 문제를 마무리했다고 거들고 나섰다. 특히 해당 교사는 ‘설리번’이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제자에 대한 사랑과 교육자로서의 사명감이 남다른 교사였다는 것이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많은 학부모와 교사들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해당 교사 구명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교사들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목소리가 하나로 모이는 분위기다. 지난주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교육부가 해당 교사를 보호하지 않은 걸 질책하는 지적도 있었다.

파문이 커지자 경기도 교육청도 교사 편을 들고 나섰다.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은 아동학대 혐의로 직위 해제된 해당 특수교육 교사를 8월 1일자로 복직시켰다. 이에 따라 해당 교사는 해직 교사가 아닌 복직된 교사 신분으로 재판을 받게 됐다.

여론이 주 씨의 행동을 과도한 교권침해로 지적하는 등 비난이 더 거세지자 재판 결과를 기다려 달라며 입을 다물었던 주 씨가 2차 입장문을 내고 해당 교사를 고소한 것에 대해 “뼈아프게 후회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아내와 상의해 상대 선생님에 대해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주 씨가 해당 교사를 법에 고소한 것에 대해 뒤늦게 후회한다고 고개 숙인 건 날로 거세지는 비난 여론에 떠밀린 감이 없지 않지만 어찌됐든 다행스럽다. 교사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에 있어 법적 고소는 학부모로서 지나쳤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장애를 가진 자녀가 학교에서 일으킨 숱한 문제를 덮어준 교사를 불신해 은밀하게 녹취 증거를 수집했다는 것만으로도 비난의 소지가 있다.

다만 주 씨의 경우는 이름이 알려진 인사라는 점에서 파장이 지나치게 확대된 측면이 없지 않다. 자녀의 교육문제를 가지고 교사를 고소·고발하는 학부모가 주 씨가 아주 드문 케이스는 아니란 말이다. 실제로 특수교사들 중에는 학생의 폭력에 시달리거나 성 비위 문제로 곤란을 겪어도 혼자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치지하고 있는 게 바로 ‘아동학대 신고’라는 건 그리 놀랍지 않은 사실이다.

장애를 가진 아동의 경우 과거엔 장애아를 위한 별도의 교육시설에 보내는 방법밖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 학교에도 자폐 등 발달 장애아를 지도하는 특수교육 전담교사들이 있어 사정이 나아졌다. 그런데 이들 교사들이 겪는 고충이 날로 과중해지는 반면에 뾰족한 해결방법 또한 없다는 게 문제다. 주 씨가 고소한 해당 교사만 해도 주위에서 다중 장애아였던 ‘헬렌켈러’를 사랑과 남다른 훈육으로 가르친 위대한 스승 ‘설리번’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하지 않나.

학부모는 내 아이를 맡은 교사가 ‘설리번’이길 바라지만 모든 교사가 ‘설리번’과 같을 순 없다. 또 이번 사건처럼 아무리 ‘설리번’ 같은 선생님이라도 학부모에 따라 한순간에 ‘아동학대범’ 취급받는 게 현실이다. 주 씨의 행동이 과했지만 주 씨만 비난할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게 학교 교육이 무너진 데서 파생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대다수 학부모와 학생, 교사 간에 쌓아온 우애와 존중관계에 깊은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