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국 교수(백석대 실천신학)가 28일 복음과 도시 홈페이지에 ‘영적 게토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최 교수는 “그리스도인은 영적 깨달음이나 경험을 종교적 차원에만 제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영적 경험은 일상의 영역에서도 경험될 수 있다. 하나님은 일상의 영역에서도 일하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하나님의 사역은 그리스도인에 의에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영적 깨달음이나 경험도 종교적 차원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거룩성은 교회 공동체나 종교 기관에서도 경험할 수 있지만, 일상의 여러 영역에서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일반은총 덕분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거룩성은 일반은총 안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일반은총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영적 게토주의나 엘리트주의에 빠지기 쉽다”며 “영적 게토주의는 기도와 같은 종교적 활동만을 통해서 영적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하나님의 사역은 그리스도인에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며, 영적 경험도 종교적 차원에만 종속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최창국 교수는 “영적 분야와 세속적 분야 또는 영적 장소와 세속적 장소로 구분하거나 범주화하는 데서 영적 경험의 장을 잘못 이해하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잘못된 구분이나 왜곡된 범주화는 영적 경험을 교회나 종교기관과 같은 특별한 곳에서만 할 수 있다고 여기게 하였다. 일상의 영역인 정치 사회 교육의 영역에서는 영적 경험을 할 수 없다는 왜곡된 신념을 갖게 하였다”고 했다.
이어 “신학적 관점에서 영적 경험은 분명히 특별은총의 영역 안에서도 경험할 수 있지만 일반은총 안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며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영적 경험과 생활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영적 차원, 윤리적 차원, 사회적 차원 등으로 구분하는 것은 바른 것이지만 영적 분야와 세속적 분야로 범주화하는 것은 바른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영적 분야와 세속적 분야로 범주화하여 일상의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차원들을 영적 삶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길 때 영적 게토주의를 낳을 수 있다”며 “영적 게토주의는 영적 경험이나 깨달음의 장을 교회나 종교적 기관으로만 한정하거나 영적 또는 신령한 직분(spiritual estate)을 종교적 일이나 소명으로만 여길 때 심화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우리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영적 거룩함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며 “부모에게 전화하는 일에서 거룩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일기를 쓰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하고, 설거지하면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차원들을 거룩한 삶 또는 영적인 삶과 일체화시킴이 없으면, 그리스도인 또는 기독교는 인간의 상황으로부터 분리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만큼 타당성을 잃게 된다”며 “일상을 떠난 영적 추구는 거룩한 것을 이상화시키거나 고귀하게 만들려는 의도와는 반대로 오히려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게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거룩한 것에 대하여 순전하게 느낄 감수성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했다.
최창국 교수는 “영적인 삶은 작은 일상의 활동 속에서 싹이 나고, 햇순이 돋고, 꽃이 피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일상적인 모든 것이 은혜의 통로가 된다”며 “그것을 세속에 맡기는 것은 이원론에 굴복하고 만물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일상적인 삶의 실체를 인정하는 사람은 삶의 부차적인 것과 본질을 더 명확히 구분할 수 있고, 또한 두 가지를 모두 유지할 수 있다”며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모든 삶에서 영적인 렌즈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가 펼쳐지는 장”이라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넓게 충만하게 누리는 방법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울러 “하나님의 은혜는 기도를 통해서도 경험할 수 있지만, 산책하고, 음악을 듣고, 친구를 만나고, 가족과 함께 여행하고, 노동하고, 정의를 위한 사회 운동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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