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집에 가서도, 굶는 사람이 있고 초막에서도, 잘 먹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물가에서도, 숭늉 찾는 사람이 있고 사막에서도, 샘을 찾아내어 목을 축이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순종이 제사 보다 낫듯이, 적용이 말씀을 듣는 것보다 낫습니다. 우리들 주변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누구보다도 말씀을 많이 알고.. 듣고..배우고, QT에, 극심할 정도로 열심을 내고 목사님들의 설교집, 강해집, 베스트셀러라는 신앙서적을, 싹쓸이할 정도로 탐독을 하는데도 삶은, 그대로이며 믿음도, 영성도, 여전한 분들이 많습니다.
하루종일 기독교 방송에 채널을 맞추어 영적인 분위기를 창출하지만 조금도 상황이나 삶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극성스러울 정도로 예배를 사모하며, 말씀 배우고, 듣기를 갈망하는데도 마른 목을 축일수 없으며, 영적인 포만감은 간데 없고, 늘 기근에 허덕이며, 갈급함에 허전해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적용에 처절하게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1;3절에 보면 '말씀을 듣고, 배우고,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 했습니다. 복있는 자는 말씀을 듣고, 아는 자가 아니라, 삶에 적용시키는 사람입니다. 목 마른자에게, 우물을 알려 주면 뭐합니까? 자신이 두레박으로 떠서 마시지 않으면, 우물곁에서도 목은 마른것 입니다. 아무리 배고프다 하여, 뷔페식당으로 안내해 주면 뭐합니까? 자신이 수저를 들고 음식을 떠서, 입에 넣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천사의 말씀을 매일 듣고, 주님이 직접오셔서 설교를 한다 한들 무슨 소용있습니까? 적용이라는 두레박으로, 말씀을 떠서 마셔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새벽을 깨우라'는 말씀에 은혜를 받았으면, '새벽을 깨우라'는 말씀에 목숨을 걸고, 새벽에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새벽을 깨우라'는 말씀에 은혜 받은 증거입니다. 포기의 영성에 대하여, 말씀을 들으면 뭐합니까? 포기에 대하여 말씀을 들을때, 눈물을 흘리며 감동받으면 뭐합니까? 실제로 하나라도, 포기를 삶에 적용해야지요. 용서에 대하여, 가슴이 후끈하도록 말씀을 들으면 뭐합니까? 실제로 삶에, 용서의 영성을 조금이라도 적용해야지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과거를 하나님으로 해석하라는 말씀에 가슴 철렁하는 은혜를 받는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말씀을 가슴에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인정하고 현실을 하나님으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은 말씀이고 나는 나이고, 은혜는 풍성하고 적용에는 인색하다면 무슨 역사가 일어나며, 무슨 축복을 기대하겠습니까? 믿고 기도하라 했으면, 믿고 기도해야 하는데 의심하며 기도하니 어떻게 응답과 기적이 일어 납니까? 감사함으로 나아가라 했으면, 감사함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불평함으로 나아가니 하나님이신들 어찌하겠습니까? 잠잠히 참아 기다리라 했으면, 잠잠히 참아 기다리는 적용에 힘써야 하는데 말씀들을 때는, 아멘이고 실제 삶속에서는, 조급하여 조금도 기다리지 못하며, 잠잠하지 못하니 어찌 영광을 보겠습니까? 나는 비교적, 영적 우월감에 젖어사는 사람들을 보며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아는 것은 너무 비대한데 비해, 적용에는 너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주옥같은 말씀을 듣는다고, 믿음 좋은 것도 아니며, 수정같은 말씀을 배운다고, 영적인 사람 또한 아니며, 신령하고, 큰 교회를 섬긴다고 나의 영성도 신령하며, 나의 믿음의 size가 큰 것도 아닙니다.
뿐만아니라, 잘 깨닫는다고, 신령한 것도 아닙니다. 적용의 size가 믿음의 size입니다. 순종의 size가 영성의 size이듯이 말이죠. 누림이 없거나, 마음에 평안이 없거나, 성숙이 더디거나, 충만의 시간이 짧다면 적용부분을 체크해 보십시요. 좋은 말씀을 사모함보다, 적용에 대한 몸부림이 더하여야 합니다. 기막힌 은혜를 사모함보다, 순종에 대한 발버둥이 더하여야 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축복과 역사는, 적용하며 순종할때, 일어난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됩니다. 이제 우리는 더 많은 말씀을 듣는것 보다.. 더 많은 은혜를 사모함 보다 더 많이, 적용하기 위해 목숨이라도 걸어야 합니다.
은혜는, 그 은혜로도 족합니다. 말씀은, 그 말씀으로도 족합니다. 적용이 문제입니다. 순종이 문제입니다.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는, 총명한 젊은이 보다는 들은 말씀 다 잊어 버리지만, 한 말씀이라도, 삶에 적용하는 할머니가 더 복된 것입니다. 오늘도 적용에 대한 칼럼을 묵상하시며 무릎을 치는, 깨달음과 은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용에 대한 말씀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어린아이가 설교해도, 그 말씀을 듣고 적용하며 축복을 받는 성도가 있고 바울과 같은 분이 설교를 해도, 적용에 실패하여 지지리도 궁상스럽게, 살아가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이미 우리 앞에는, 풍성한 말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생수의 근원되시는 말씀의 우물가에 와 있습니다. 이제 선택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물을 마실 것인지.. 음식을 떠서 먹을 것인지 말이죠. 우물가에 왔다고, 갈증이 해갈되는 것도 아니며 음식 앞에 있다고, 배부른 것이 아닙니다. 물은 마셔야 하고, 음식은 먹어야 하듯이 말씀은 적용해야 역사가 일어나고, 축복은 순종해야 얻습니다.
믿음이란 생각하는 것이 아니며, 고민하는 것도 아니며, 지식의 증가도 아니며, 실제로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한 말씀이라도, 삶에 적용하는 것은 배고플 때 밥 한 숟가락이라도, 입에 넣는 것과 같은 것이며 목이 탈때 물 한 잔이라도, 마시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차분하게, 기본으로 돌아가십시요. 늦었다고 생각 되어지지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바르게 출발하십시요. 성경을 읽으십시요. 깨끗한 고급스런, 새 성경을 자랑하지 마십시요. 성경이 새것일수록, 영성은 흔것일수 있습니다. 성경이 지저분해질 정도로, 자주 끌어 앉고 씨름하십시요. 주야로 묵상하십시요. 말씀 앞에, 오래 머무르십시요.
성령의 나타남을, 사모하십시요. 아구까지 물을 채울때, 그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실을 기억하십시요. 당신의 허전하고, 빈 마음의 그릇에, 말씀을 아구까지 채우십시요. 언젠가는 그 물이 포도주가 될테니까요. 요즈음 어디에 목숨을 걸고, 그렇게도 바쁘게 살고 계십니까? 필요하다면, 말씀 적용하는 일에 묵숨이라도 걸어 보십시요. 기도하는 일에도, 그렇게 바쁘고 피곤해 보십시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잘 알면서도 우물(말씀)가에서 숭늉 찾는 사람이며, 잔치집(교회)에서 배곯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