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선 20대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충격을 주고 있다. 소셜미디어 등에선 해당 교사가 학교폭력과 관련해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퍼지고 있으나 학교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어 철저한 수사로 속히 진상을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앞서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선 6학년 학생이 담임교사를 폭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해당 교사는 전치 3주의 상해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는 등 심각한 상태이나 학교측이 쉬쉬하는 바람에 뒤늦게 외부에 알려졌다. 교원단체들은 바닥까지 떨어진 교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보고 있다.
초등학교 신입 교사가 교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고,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을 당해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은 두 사건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교권 추락’이다. 학교라는 교육 현장에서 교사가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폭언·폭행을 당하는 등의 교권 침해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는 이 두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교육현장에 밀어닥친 위기는 이런 특정 사례가 전부는 아니다. 학교와 교실이 붕괴하는 게 더 큰 문제다. 그 원인을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순 없겠지만 교육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지목하는 게 ‘학생인권조례’다. 이 조례가 제정된 후 학교 내에서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또는 학부모 사이에 관계성과 상대성이 완전히 무너지고 오로지 ‘학생의 권리’만 남은 게 오늘의 학교라는 것이다.
교권 추락이 ‘학생인권조례’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있다. 서울특별시의회 교육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지난 4월 25일자로 낸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에 전국적으로 발생한 교권 침해 사례는 1,570건이었다. 그런데 2012년을 전후해 급격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1년부터 2013년 사이에 교권 침해가 약 3배에서 5배 가까이 급증했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10월 경기도를 시작으로 2012년 1월에 서울시와 광주광역시가, 213년 7월에는 전라북도에서 잇따라 제정됐다. 현재 전국 17개시도 중 서울·경기·광주·전북·충남·제주 등 6곳에서 시행 중이다. 학교라는 교육현장에서 교권 침해 사례가 급증하게 된 원인이 모두 ‘학생인권조례’에 있다고 단정할 순 없겠으나 조례 제정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학생인권조례’는 주로 체벌과 학생 의사에 반하는 두발 및 복장 규제 등 주로 학생의 기본적 인권침해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서울과 경기, 전북, 충남에선 성별과 종교, 정치적·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조례가 이른바 ‘교육계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불리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서울시 학생인권 조례엔 “학칙 등 학교 규정은 학생 인권의 본질적 내용을 제한할 수 없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학칙보다 조례가 우선이라는 건데 교권의 추락을 부른 근본적인 원인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학생의 권리만을 인정하고 교사의 수업권 등 다른 권리는 침해해도 상관없게 만들어진 조례가 학교와 교실을 망가뜨리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학생인권조례’ 폐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런 폐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다. 서울시의 경우, 조례안 폐지를 요구하는 시민단체가 학부모 및 시민 6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주민 청구를 제출했는데 서울시의회가 이를 받아들여 지난 3월에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서울시에 이어 충남도의회도 조례안 폐지를 검토 중이다. 경기와 전북교육청은 조례 폐지 대신 학생을 비롯한 교직원 등 학교 구성원 모두의 권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조례 개정 시도를 하고 있다.
정부도 최근 잇따르는 교권 추락이 학생 인권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제도와 문화에 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1일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실 현장이 붕괴되고 있다”며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관련 조례 등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학생인권 조례는 학생의 기본권이 학교 교육현장에서 부당하게 취급당하는 걸 막기 위한 취지다. 그런데 학생의 학교생활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빠진 채 ‘내 권리’만 명문화된 게 문제다. 다른 학생이나 교직원이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는 나만의 권리는 방종과 무책임이지 인권이 아니다.
젠더 이념의 주입 등 학생에게 왜곡된 인권의식을 심어주는 ‘학생인권 조례’가 남긴 폐해가 더 이상 방치하기 힘든 수준이다. 학교와 교실의 기본적인 상호관계, 다른 학생들과의 관계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무너뜨리면서 결과적으로 ‘교실 붕괴’를 가져왔다. 그런 원인부터 제거해야 학교와 교실이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