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차라리 내가 저 학생에게 맞았다면 교권보호위원회에서 퇴학 조치가 나왔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교사들은 (문제 행동 학생을) 겪어도 어디다 하소연할 데가 없다. 선생님들이 가장 힘없는 존재가 됐다."
지난달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한 학생에게 출석정지 10일 처분을 결정했던 서울 한 고등학교의 교감 A씨가 21일 통화에서 밝힌 내용이다.
A씨에 따르면 정서행동장애 판정을 받았던 해당 학생은 학교 기물을 파손하고 교사들에게 상습적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A씨는 "저나 생활지도부장은 퇴학 의견을 냈는데, 위원회에 참석한 학부모 등이 온정적으로 처분하면서 출석정지에 머물렀다"고 전했다.
서울 양천구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당한 데 이어 서초구 한 초등학교의 저연차 교사가 극단 선택을 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교사들이 들끓고 있다.
교사들은 실효성 없는 법·제도로 인해 문제가 있는 학생에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외려 악성 민원과 무고성 아동학대 쟁송에 시달려 왔다고 토로해 왔다. 일련의 사건들에 교사들이 참지 못하고 울분을 토하는 배경에 교권추락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6학년 담임교사 A씨가 교실에서 정서행동장애 판정을 받은 학생에게 폭행당해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당시 해당 학생은 상담 수업을 빼고 체육활동에 참여하겠다며 '이미 정해진 상담시간을 빼기에는 곤란하다'는 A씨와 실랑이를 벌이다 폭행을 저질렀다.
동료 교사에 따르면, 해당 학생은 가위와 큰 거울을 던지고 컴퓨터 모니터를 쓰러뜨리기도 했다. 매를 맞던 A씨는 전화를 하려던 순간 허리가 감겨 내동댕이쳐졌고 얼굴과 팔 등에 부상을 입어 전치 3주를 진단 받았다.
해당 학생은 정서·행동장애 학생으로 특수교육 대상자로 분류됐으며 일반 학생과 함께 수업을 듣는 통합학급에 배치됐다. 전날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해당 초등학교는 교권보호위원회를 통해 해당 학생에 대해 강제전학 조치를 처분했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 단계라 전학이 가장 높은 수위의 처분이다.
지난 18일에는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내에서 1학년 담임교사 B씨가 극단 선택을 해 숨진 채 발견됐다. B씨는 지난해 3월 임용돼 2년차 신규교사였다.
아직 경찰이 수사 중이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B씨가 동료들에게 수십 차례 학부모의 민원에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며 '악성 민원'이 사인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특수학급을 맡고 있던 교사 C씨가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다른 학생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자 주의를 줬는데 불만을 품은 학생이 C씨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넘어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C씨는 목 부위에 부상을 입은 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C씨는 해당 학생에게 지난 4월부터 폭행에 시달려 왔다고 주장했다고 전해졌다. 해당 학생은 교권보호위원회에서 출석정지 조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련의 사건에 교직사회는 당국의 미흡한 대처를 규탄하고 있다.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등 관련 법·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서울교사노조는 양천구 A교사 폭행사건 당시 교권보호위원회가 피해 발생 20일이 지나 열렸고 교육지원청 학교통합지원센터에서도 피해 교사에 대한 적극적 지원 등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B교사의 사인을 두고 학교폭력 업무를 맡으며 심적 고통을 겪어 왔으며 유력 정치인의 가족이 사건에 연루됐을 수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 서이초 측은 전날 입장문을 내고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정성국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은 전날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입장문 내용을 살펴보면 더욱 더 큰 의문이 든다"며 "무엇이 선생님의 소중한 생명을 포기하게 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제자에게 매 맞는 교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총에서 확보한 교육부 자료를 보면, 2017~2022년 6년 간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거나 상해를 입혀 교권보호위원회 심의를 받은 건수는 1249건에 이른다. 코로나19 유행기인 2020년 113건이었으나 2021년 239건, 2022년 361건으로 상승세다.
그럼에도 교사들 사이에서는 학부모의 폭언·욕설이나 악의적인 아동학대 신고는 일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기분상해죄', '명퇴도우미'라는 신조어도 나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해 9월21일~10월4일 전국 교사 62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아동학대 사안 처리 과정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 96.7%가 '오해로 인한 아동학대 신고가 있다'고 답했다.
해당 설문에 응답한 교사들은 '초등 아이에게 목소리를 엄하게 했다는 이유로 아동학대 신고', '초등생 아이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는 이유로 정서학대 신고', '받아쓰기 진행으로 초등 아이의 자존감이 떨어졌다고 신고' 등의 사례가 있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91.6%가 "소명 기회, 진상 조사 없이 민원만으로 수사기관에 신고된다"고 답했다. 응답 교사 92.9%는 "나도 아동학대로 의심받아 신고 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교사들이 당국을 불신하고 '기댈 곳이 없다' 토로하는 이유로 꼽힌다.
지난 11일 교총은 소송 보조금(교권옹호기금) 지급을 신청한 교사들의 '교권 침해' 소송 87건 중 44건(51%)이 아동학대로 고소당한 사례였다고 밝혔다. 교총은 이 중 66건에 1억6055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는데, 이는 역대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아동학대 형사 고소를 당한 뒤 무혐의 종결된 사건이 다수다.
교육 당국은 제자에게 맞아 전치 3주 진단을 받은 양천구 초등교사 A씨에게 심리상담, 상해치료, 법률지원단 자문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전날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 간담회를 갖고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해 심각한 교권침해가 원인이 됐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데 사실이라면 교육계에 중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교육부와 교육감들은 국회에 계류된 교권침해 방지법인 초·중등교육법,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등의 입법에도 힘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교원단체에서는 교육 당국의 이같은 대처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식이라며 보다 강경한 조치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성국 교총 회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무분별한 민원, 아동학대 신고에 대해서는 반드시 응당한 책임을 묻는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며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와 악성 민원 등 중대한 교권 침해에 대해 교육청이 반드시 수사기관에 고발해 학교와 교원을 보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