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도 희성(稀姓)인 제갈(諸葛)씨가 유명한 것은 삼국지의 제갈공명때문이다. 공명은 아호이며 원 이름은 량(亮)으로 흔히 제갈량(諸葛亮)으로 불리운다. 그가 와룡선생이란 별호를 얻은 것은 한때 유비의 참모였던 서서(徐庶)가 사마휘수경선생밑에서 동문수학한 동무 제갈량을 소개하면서 "그는 물에 잠긴 와룡(臥龍)과 같은 인물"이라고 천거한데 기인한다. 이후 유비는 와룡을 물속에서 끄집어 내기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제갈량에게는 7세위인 형 제갈근(諸葛瑾)과 9세 연하인 동생 제갈균(諸葛均)이 있었다. 조실부모한 삼형제는 평탄치 못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총명한 그들을 당시 천하를 삼분하고 있던 제후들이 가만 둘리 없었던 터라 형 근(瑾)은 오나라의 손권을 섬겨 훗날 주유, 노숙을 이어 오의 제2인자인 대도독에 오르게 된다. 한편 제갈량과 제갈균형제는 유비를 도와 훗날 촉의 제 2인자인 승상의 위에 올라 오의 장형(長兄) 근(瑾)과 원치않는 대적을 하게된다. 형제가 삼국지 천하 삼분지계의 두 축을 오랫동안 이루면서 제갈씨의 성가를 내었던 것이다.
그런데 형 근은 오주 손권의 괴팍한 성격과 오나라의 기라성같은 군벌과 여타한 명문세도가의 견제속에서도 신임을 잃지않고 승승장구의 길을 걷는데 그것은 그가 평생 중용의 길을 걸었던 눈치의 달인이었기 때문이다. 적벽대전이후 형주를 점령한 유비와 갈등국면을 지속한 손권은 근을 유비에게 보내 형주반환을 요구하지만 댓바람에 거절당한다. 유비에게 누이를 주어 매부 처남관계를 정략적으로 유지하던 그는 누이를 빼돌려 유비와 절연하게 되니 제갈 형제들이 유탄을 맞은셈이 되었다.
근은 한때 오국의 중신들로부터 유비의 간첩이란 누명도 쓰나 개의치않고 손권을 향한 해바라기 충성을 다하고 아우 량과도 불가근 불가원의 곡예관계를 지속하게 된다. 량은 이런 형의 불안한 처지를 좌불안석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형이 오주의 사신으로 올때 마다 유비를 배석치않고 빠져버렸던 것이다. 자식이 없어 형 근의 아들중에 하나를 양자로 들였던 그로서는 더욱 어려운 처신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삼국지의 세계는 제갈씨의 구도대로 움직여 나갔던 것이다. 만인지상 일인지하(萬人之上一人之下)의 길을 제갈 형제들 만큼 성공적으로 행한 정치인들이 흔치 않을 것이다.
미국 35대 대통령이었던 죤. F 케네디에게는 영민한 동생 로버트 케네디가 있었다. 그는 형 존 F. 케네디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낼만큼 영민하였고 형이 암살당한 후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였으나 그 역시 흉탄으로 짧은 생애를 마치게된다. 우리 속담에 '형만한 아우없다'라 하지만 제갈씨의 근과 량, 케네디가의 형제룰 보면 꼭 맞는 격언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