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철학에서는 다음 네 가지를 인정해야 인생 살기가 수월하다고 가르친다. 첫째,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형태(形態)가 있는 것은 반드시 소멸된다. 그러니 나도 반드시 죽을 것이라 인정하며 세상을 살아야 한다. 죽음을 감지(感知)하는 속도는 연령에 따라 다르다. 청년들에게는 죽음을 설명해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자기와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인들에게 죽음은 마치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는 것과 같아서, 부모나 배우자 또는 아들, 딸이라 해도 그 길을 막아주지 못하고, 대신 가 주지 못하며 함께 갈 수도 없다. 그러니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아껴서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둘째, 회자정리(會者定離)이다.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는게 세상사 법칙이요, 진리이다. 사랑하는 사람, 일가 친척,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 며느리와 사위, 스승과 제자, 목회자와 신자, 명예, 부귀영화, 재산 등 모두 끝까지 그대로 움켜쥐고 싶지만 하나 둘 모두 내 곁을 떠난다. 인생이란 정지가 아니라 중단 없이 계속 흘러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매달리고 집착하며 놓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이 바로 괴로움(苦)의 원인이요 만병의 시작이니, 마음을 새털같이 가볍게 하고 언제나 홀홀히 떠날 준비를 해야 될 것이다.
셋째는 원증회고(怨憎會苦)이다. 미운 사람, 싫은 것, 바라지 않는 일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내가 아무리 잘 해도 원수, 가해자, 아픔을 주는 사람, 모습도 보기 싫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가난과 불행, 병고, 이별과 죽음 등 내가 피하고 싶은 것들이 나를 찾아온다. 세상은 돌고 돈다. 빙글빙글 돈다. 주기적으로 돈다. 올라가면 내려오고 내려가면 다시 올라간다. 달도 가득 차면 다시 이지러진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된다. 나도 자연의 일부인 만큼 이런 사이클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이를 생애주기(Life cycle)라 한다. 현명하고 지혜롭고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은 능히 헤쳐나가지만, 우둔하고 어리석고 매사에 소극적인 사람은 그 파도에 휩쓸리니 늘 마음을 비우고 베풀며 살아야 된다.
마지막으로 구부득고(求不得苦)이다. 구하고자, 얻고자, 성공하고자, 행복하고자 원하지만, 세상살이가 그리 만만치 않다. 내가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어지면 고통도 없고 아픔도 없으련만, 모든 것은 유한적인데 사람 욕심은 무한대여서 아무리 퍼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와 같다. 그러므로 욕심 덩어리 가득한 마음을 조금씩 덜어내 비워가야 한다. 자꾸 자꾸 덜어내고 가볍게 할 때 만족감, 행복감, 즐거움이 뒤를 따른다. 마치 형체(形體)를 따르는 그림자와 같다(源潔則流淸, 形端則影直).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낙타 이야기'를 살펴보자. 어떤 아버지가 낙타 17마리를 남기면서 유언으로 1/2은 첫째 아들에게, 1/3은 둘째 아들에게, 1/9는 셋째 아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다. 그런데 도저히 나눌 수가 없어 고민하다가 낙타를 타고 지나가는 현인에게 해결을 부탁했다. 그는 자기 낙타 한 마리를 보태서 18마리를 만들어 놓고 1/2인 9마리를 첫째에게 1/3인 6마리를 둘째에게 1/9인 2마리를 셋째에게 나눠주고 자기는 원래대로 한 마리의 낙타를 타고 가버렸다. 보태주니 해결이 됐다. 움켜쥐면 지옥이 되고, 내놓으면 천국이 된다. 네 것도 내 것이라 하면 다툼이 생기고, 내 것도 네 것이라 하면 사랑이 생긴다. 이것이 세상 사는 지혜이다.
기독교 성경에서는 인생을 허무한 것으로 본다. 솔로몬 왕이 기록한 전도서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Smoke, nothing but smoke. There's nothing to anything- It's all smoke)"로 표현하고 있다. 안개나 연기, 물거품과 뜬구름 같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다(He's left us in the dark, so we can never know what God is up to).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아무리 가져보고 누려보고 먹어보고 입어봐도 허무하다는 것이다.
'Christian(크리스천/신앙인)'에서 'Christ'를 빼버리면 'ian'만 남게 된다. 그것은 곧 'I am nothting(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이 되어 버린다. 1,000,000,000이란 숫자에서 제일 앞의 '1'을 빼 버리면, '0'이 아무리 많이 붙어도 소용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Christ'가 있어야 하고, '1'이 있어야 그뒤의 '0'들이 가치로운 것이다. 그래서 전도서의 결론은 이러하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 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Fear God, Do what he tells you, And that's it, 전 12:13)".
경외(敬畏)란 말은 존경하고 사랑할 때 두려운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거룩한 존재 앞에 설 때의 합당한 태도이다. 하나님은 창조자·보호자·심판자의 3중 사역을 하시기 때문에, 변호사이면서 검사이면서 판사인 것이다. 구원해 주시는 변호사는 감사의 대상이지만, 심판하는 판사나 검사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