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많은 것을 채우면 기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기쁨은 자신을 비움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을 비우고 그 안을 성령으로 채울 때 비로소 기쁨이 시작된다고 고성준 목사(수원하나교회 담임)는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찬란하게, 더 멋지게 자아를 가꾸고 자랑하는 것을 선하고 기쁘게 여기는 이 시대를 향해 ‘괴랄한 자아’를 비워 성령으로 기뻐하는 ‘종의 형체’가 되어야만, 하나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동등됨을 취하지 않는 자기부인과 겸손과 순종의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만,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돌보고 세우는 영적인 사역이 시작되며, 케노시스의 능력이 흘러간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기쁨에는 역설이 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가장 기뻐하셨다. 자신을 비우고 십자가에 오르실 때, 거기에는 역설적이게도 충만한 기쁨이 있었다. 자신을 비우는 것을 헬라어로는 ‘케노시스’(κενοσις), 자기비움이라고 한다. 나는 이것이 예수께서 주시는 기쁨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예수께서 주시는 기쁨은 상황과 상관이 없는 기쁨이다. 낙심과 무기력을 파쇄하는 기쁨이며, 사람들의 상식을 뒤엎는 기쁨이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우리의 상황을 모르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기뻐하라 하셨다”고 했다.
이어 “자아가 나의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아낼 수 없다. 그저 타락한 자아로 인한 고통과 슬픔, 원망과 낙심만 가득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를 비워 빈 공간을 만들 때, 그리고 그곳에 성령님을 모셔들여 채울 때,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없고 맛볼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 기쁨은 하늘로부터 오는 영원한 기쁨이다. 교회는 관여하는 곳이다. 서로의 인생에 관여하고, 서로의 삶에 관여하는 곳이 교회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교회는 관여하는 공동체의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영적인 능력도 잃어버렸다.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서로가 서로의 일을 돌보고자 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케노시스는 자신을 비움으로써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나의 타락한 자아가 비워지고, 그곳에 하나님의 영이 가득할 때 비로소 우리는 바울이 이야기하는 ‘복음에 합당한’ 성도의 삶과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고,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기쁨과 평강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복음의 비밀이자 예수께서 행하셨던 케노시스의 능력이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 하나님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서 우리 안에 ‘소원’을 둔다. 다른 말로는 ‘갈망’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소원하고 갈망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타락한 인간의 본질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는 케노시스의 마음으로 바꾸는 십자가의 혁명이 필요하다. 신에게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게 하는 빌립보 성도와 같은 ‘그 사람’이 있는가? 당신의 인생을 전제로 부어드려도 아깝지 않을, 오히려 기쁘고 함께 기뻐할 빌립보교회가 당신 삶의 이유가 되길 축복한다. 정말 후회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고성준 목사는 서울대 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국비유학생에 선발되어 미국 UC버클리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전침례신학대학교 목회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수원하나교회 담임목사이자 컴미션(Come Mission) 국제 이사, 난민을 섬기는 NGO ReHope(난민의 소망)의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카이로스 1: 하나님의 시공간>, <카이로스 2: 하나님의 타이밍>, <나의 데스티니 찾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