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한 죽음이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참 생명은 죽음에 있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목숨을 아끼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 잘 죽는 자가 잘 사는 자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생명은 죽음에 있다. 사랑의 죽음은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의 사랑의 철학은 생명철학의 일대 혁명이다. 이제부터 다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도리어 열심히 이 죽음의 길을 찾을 것이다. 지금에 현실, 현실이라고 물거품처럼 터뜨리다가 발자국소리만 들어도 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게와 같은 인간들이 횡행하는 중에서 있어서, 우리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하늘 높은 이상의 소리이다. 영원히 살아 말하는 지도정신이다. 이상과 신앙, 지도 정신의 결핍, 이것이 현대 우리나라와 세계의 근본적 결함이 아닌가. 온 세계 인류는 이러한 이상의 사람, 믿음의 사람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
지강유철 – 장기려 평전
주님의 지상명령인 전도를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없습니다. 또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전도하여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전도를 강조하고 독려하는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 그리고 현장에서 전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모두 전도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확한 의미와 규정 없이는 그 의미에 걸맞는 효율적인 실천이 따를 수 없고, 실천적인 행동들에 관한 평가도 불가능합니다. 모든 학문적이고 실천적인 일들은 정확한 개념의 규정을 시작으로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실천적인 행동들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전도’라는 개념의 정의 없이 전도가 행해질 때 주객이 전도되어질 수 있습니다.
하도균 – 전도 바이블
초기 그리스도교를 향한 우리의 시선은 왜곡되어 있다. 전문적인 로마사 연구자들은 더 폭넓고 균형감 있게 그리스도교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고대 그리스도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편 초기 그리스도교 연구자들은 그리스도교의 모습과 입장을 터무니없을 정도로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문제들과 사료들에는 익숙하지만, 그리스도교 바깥의 사료는 대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교회사 연구에서 교회 바깥의 역사는 형식적으로 덧붙이는 모호한 배경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도교 외부자들이 남긴 기록 상당수는 단편의 형태로만 전승되었다. 그리스도교에 관한 이야기는 편지에서, 또는 무언가 다른 주제를 다룬 글이나 역사 서술에서 우연히, 혹은 형식적으로 스쳐 지나간다. 물론 그리스도교에 관해 정면으로 비판한 저작들의 일부가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저작들은 오늘날 모두 소실되어 원형 전체를 찾을 수는 없다.
로버트 루이스 윌켄 –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