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가운데 기록된 부흥의 시대를 살펴 보면 공통적인 현상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교회의 심장과 같은 진리가 재발견되어지는 “진리의 회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리는 언제나 “구원에 관한 진리”였다. 중세 교회가 그토록 깊고 어두운 침체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 구원에 관한 진리가 “면죄부”라고 하는 거짓된 가르침에 깊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시대에 마틴 루터는 사도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통해 “구원에 관한 진리”를 재발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세계 문명사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둘째, 이 구원에 관한 진리의 회복은 개인의 회심과 영적 각성 운동을 촉발시켰을 뿐 아니라, 전방위적인 사회 개혁 운동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영적 부흥이 임하는 곳마다 놀라운 정치사회 변혁이 수반되었다. 미국에서는 2차 대각성 운동이 전개되면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고, 미성년자들의 노동이 금지 되었으며, 다양한 자선단체,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영국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은 영국의 수많은 정치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였고, 이와 같은 변화를 목격한 존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단순히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며, 단순한 거룩함이 아니라 사회적인 거룩함이다”라고 말했다.
셋째, 이와 같은 놀라운 영적 부흥은 사탄의 사나운 반격을 불러왔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제1차 영적 대각성 당시 자신이 섬기던 노스햄프턴 교회 안에서 일어났던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부흥 이후에는 언제나 사탄 마귀의 영적 공격들이 뒤따라 왔음을 기록하고 있다. (자살 비방, 조롱)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와 같은 사탄의 사나운 반격이 당장은 위협적으로 보이고 부흥의 열매들을 소멸시킬 것처럼 맹렬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한층 더 강력한 부흥과 교회 성장의 불씨가 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부흥을 갈망하는 이 땅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부흥을 시기하는 사탄 마귀의 전략을 알고 대비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와 같은 사탄의 공격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부흥을 거침없이 이뤄 나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부흥에 소극적이거나 두려운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흥은 마귀의 뺨을 치는 행위다. 뺨을 맞은 마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반격을 가하죠. 그러나 마귀의 그 반격 때문에 마귀의 손가락이 부러지고, 마귀의 턱뼈가 부서지며, 마귀의 척추가 나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의사였던 누가가 기록한 초대교회의 영적 부흥에 관한 기록에서도 이와 동일한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행5:12-14)
이와 같은 사도들의 놀라운 치유 사역은 당국의 공격과 박해를 유발시켰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행5:17-20)
부흥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를 시기하며, 이 세상을 영원토록 사망의 저주 아래 가둬두고자 하는 사탄 마귀의 맹렬한 공격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사도들은 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의 사자를 보내셔서 제자들을 가둔 옥문을 열어 제치고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 나가게 하셨다. 생명의 말씀은 그 자체로 생명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견고한 옥문이라 할지라도 생명의 말씀을 가둬 둘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생명의 말씀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 향품을 바르기 위해 안식 후 첫날 매우 이른 아침에 무덤을 향해 나아갔다. 그들은 서로 걱정하며 갔다. “누가 우리를 위해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그런데 무덤에 도착해 보니 이미 돌이 굴려져 있었다. 그 때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이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제자들이 전한 생명의 말씀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관한 소식이다. 그리고 이 소식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이 생명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 생명의 능력이 되어 절망의 옥에 갇혀 있는 자들의 옥문을 열어 주실 것이며, 질병의 고통 안에 갇혀 있는 자들의 옥문을 열어 주실 것이다. 설령 이 땅에서 죽어 무덤 속으로 들어간 자들이라 할지라도, 이 소식을 믿고 죽은 자들은 그들을 가두고 있는 무덤의 옥문을 열고 예수님처럼, 나사로처럼 무덤 밖으로 걸어 나오는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생명의 말씀은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셔서 무덤의 옥문을 열어 제치신 그리스도의 권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다. 이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 생명의 말씀만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 일은 생명의 말씀이 스스로 일하실 것이다. 죽어 있는 영혼, 가정, 죽어 있는 교회, 죽어 있는 나라 안에 생명을 불어 넣어 영적인 각성과 부흥을 일으키실 것이다. (계속)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윌버포스 크리스천 스쿨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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