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는다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아기가 생기는 것은 생명의 창조이다. 경이롭고 신비롭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 139:13-14)
”해피 버스테이 투 유!” 인류 사회는 아기의 출생을 큰 기쁨으로 여겨왔다.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가 짝을 이루는 결혼과 아기의 출산을 기뻐하고 축하한다. 우리 크리스천은 태어나는 아기를 하나님의 선물로 알고 기뻐한다. 아기는 인간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우리에게 선물하신 것이다.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욥 31:15)
아기는 사랑과 섹스의 결실이다. 우리는 아기를 낳고 키우고 장성한 후에는 결혼하도록 도운다. 그리고 손자를 돌본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성대한 잔치를 벌인다. 이런 기쁨은 아무나 다 누리는 것이 아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시 127:3-4)
그러나 “젠더 이데올로기”는 성적 자유스러움과 안락을 최우선시하는 풍조이다. 성혁명가들에게는 결혼해라 또는 아기를 낳으라는 권고는 인권 차원의 억압이 된다. 아기는 원하는 사람만 낳으면 되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듯 임신은 무슨 혐오스러운 일처럼 되어 간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 임신 했어”라고 말하는 것은 기쁜 소식이라기보다 무슨 재난을 선고하는 듯하다. 두 연인의 얼굴은 심각해진다. “나,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즉 임신이 나의 행복, 직업. 커리어, 등등을 훼방한다고 본다. 그래서인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섹스, 결혼, 임신, 낙태 등등의 결정을 여성의 권리라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특유의 이타주의나 “양육본능”은 남아있는 듯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낙태는 찬성하면서도, 약자를 케어하는 일, 소수자를 위한 시위, 반전 반핵 시위. 미투운동, 반려견 키우기 등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사실 임신의 소식은 부부에게 심리적 부담을 준다. 출산에 대해 대비하여야 하고, 내면적으로는 부모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야 하며, 외면적으로 부모 역할, 아기와 관계를 맺을 정신적 태세 등을 갖추어야 한다. 다른 자녀, 자신의 부모 등 다른 가족과의 관계도 재조정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스트레스가 된다. 그러나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젊은 부부는 인격이 성숙한다.
그런데 출산의 과정은 고통스럽기만 한가? 진통의 아픔에 대해서 흔히 “두려운 일”로 소문나 있다. 그러나 출산 동안의 진통은 괴롭지만, 잠깐 동안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통증도 견딜만하게 해 주셨다. 즉 여성의 몸은 이에 대비되어 있다. 진통에 대해 인체는 엔돌핀, 옥시토신 같은 보상기제를 갖추고 있다. 옥시토신은 분만시 자궁을 수축시킴으로 통증을 일으키지만, “기묘하게도” 산후에는 모자간의 애착과 사랑의 관계를 형성해 준다. 어머니는 자신이 안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며 출산의 고통을 잊고 행복을 느낀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요 16:21) 옳은 말씀이다.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은 무엇으로 비교할 수 없다.
전반적으로 출산 경험은 여성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주며, 여성의 자기신뢰와 능력감을 증강시키며,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The European project COST (Cooperation in Science and Technology) Birth는 유럽 여러 나라의 의사, 과학자, 정책입안자들, 그리고 서비스 사용자들이 협력하여 건강한 출산을 증진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이다. 지난 4년간 프로젝트책임자였던 스페인의 정신과의사 Dr. Ibone Olza는, 많은 연구 결과들을 검토한 결과, 출산시의 경험을 통해 여성의 자기 신뢰와 능력감이 증강된다고 하였다. 즉 출산이라는 과정은, 출산시 경험하는 온갖 감정, 생각, 행동 등이 어우러지면서 진행되는 “출산의 권력부여의 여행”(the empowering journey of giving birth)이라는 것이다. 즉 출산은 강렬한 변환적 정신적 경험을 하게 해 준다. 출산경험을 통해 산모는 자신의 신체를 더욱 신뢰하게 되고, 곧 발휘하여야 할 모성(motherhood)에 대비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더 강렬한 자신감을 갖는다.
그래서 출산 후 여성은 자연분만을 성취하고 경험한 것에 대해 자랑과 기쁨을 느낀다. 출산은 자신의 가장 위대하고 비교할 수 없는 성취라는 느낌을 강하게 가진다. Dr. Olza에 의하면 한 여성은 산후 느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용감하였고 강하였다, 나는 그랬다. 맞다, 나는 해냈다. 맞다. 난 할 수 있다. 나는 매우 행복하다. 솔직히 말해 나는 태어난 이후 이런 기쁨은 결코 느껴보지 못했다. 나는 이 기쁨이 어디서 오는지 모른다. 나는 나에게 샘솟고 있는 이 끝없는 기쁨을 어떻게 묘사할지 모르겠다.” 흔히 산모는 흥분되는 기쁨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 내가 아이를 낳았구나”하는 느낌은 작은 소녀에서 드디어 한 사람의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또한 많은 요인들이 임신과 출산의 기쁨을 방해할 수 있다. 따라서 남편, 부모,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출산의 과정을 지지해 줄 필요가 있다. 특히 부부의 상호 지지와 사랑이 필요하다. 이때 산모 자신이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돌봄과 양육을 받았던 기억이 소녀에서 여자로 변신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즉 산모의 친어머니가 산모의 롤모델이 된다. 이로서 가족 가치관이 여성에서 여성으로 세대를 이어 전달된다,
나아가 크리스천은 출산의 고통에 대해 “기독교적 의미”를 생각한다. 즉 고통을 통한 사랑이라는 개념이다. 그런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몸소 모범으로 보이셨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이 있기 때문에 사랑과 애착이 깊어지고 강해진다. 엄마의 진통과 꼭 같이 아파하는 남편의 사랑은 부부를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 준다.
영적으로는, 크리스천은 산고를 통해, 인류의 첫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해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비하심과 은총으로 “다시 출생한다”(reborn 또는 born again). 아기의 출생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주의하게 해준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우리는 거듭나는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임신과 출산은 생육과 번성의 근원이며, 가족 가치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과정이며, 축복의 통로이다. 우리는 출산을 어려워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알도록 해 주어야 한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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