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끔찍한 영유아 살해·유기사건, 법과 제도만으론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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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가 안 된 ‘미등록 아동’에 대한 끔찍한 살해‧유기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태어난 영·유아 중 출생신고도 안 돼 있고 생존 여부도 알 수 없는 사례가 2236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감사원이 지난 3월부터 보건복지부에 대한 정기 감사를 진행한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충격적인 건 지난 8년간 출생신고 안 된 2236명 중 불과 23명을 조사한 결과만으로도 4명의 아기가 살해 유기된 사례가 밝혀졌다는 점이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서는 생모가 아기 둘을 연년생으로 낳은 뒤 곧바로 살해해 냉장고에 유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겨우 1%만 조사했는데도 이런 상황인데 2236명 모두 조사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의료기관에서 출생한 신생아에겐 출생 직후 B형간염 등 필수 예방접종을 위해 자동으로 임시 신생아 번호가 부여된다. 의료기관은 이 번호로 필수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질병관리청으로부터 그 비용을 정산받게 된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2천여 명의 아기의 존재는 이 번호마저 없었다면 영영 묻혔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임시 신생아 번호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 건 파악할 수 있으나 아이를 낳은 산모에 대한 정보가 반영되지 않아 실제 출생신고 여부를 추적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학대받는 아동을 찾아내기 위해 가정양육 아동 전수조사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출생신고를 한 아동의 경우만 해당되는 허점이 있다. 출생신고 없이 낳은 후 곧바로 버려지거나 학대받는 아동은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런 사례가 수천 건 적발되자 정부가 2236명의 아동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2천여 건을 다 전수조사하면 영유아에 대한 잔혹한 범죄가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1%만 표본 조사했는데도 4명이 나왔는데 99%를 조사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 생사를 가려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 있어도 학대나 유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전수조사는 꼭 필요하다.

다만 정부가 전수조사를 한다고 ‘사각지대’가 사라질지 의문이다. 밝혀진 2236명의 경우 병원에서 출생했기 때문에 출생기록이 남아 있지만,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출산한 경우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전수조사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에 속도를 내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7~28일께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출생통보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변수가 없는 한 이달 말경 국회 본회의에서 관련 법안이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출생통보제’는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누락함으로써 기록에 없는 아동이 생기지 않도록 의료기관이 출생 정보를 직접 지자체에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와 함께 ‘보호출산제’는 위기 상태에 있는 임산부가 의료기관에서 익명으로 출산한 아동을 지방자치단체가 보호하는 제도를 말한다.

사실 ‘출생통보제’는 정치권에서 이번에 처음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이미 2017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가 그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 후 문재인 정부가 2019년에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면서 이 제도의 도입을 약속했으나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제도 도입이 미뤄지면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에 대한 학대 및 살해‧유기 사례는 음지의 독버섯처럼 자란 셈이다.

지난 문 정부 5년에 더해 현 정부 1년간 저출산 인구 감소 위기 극복을 위해 막대한 국민 혈세가 투입됐다. 하지만 저출산 상황은 오히려 악화일로에 있다. 이런 현실에서 태어난 아기의 생명조차 지키지 못했다는 건 무슨 말로도 설명이 안 된다.

한국복음주의의료인협회(한복의협)는 “우리는 모두 한때 어머니의 태아였다. 어머니 태중에 잉태되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기에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와 존엄성을 지닌 것”이라고 했다. 한복의협은 “그런 소중한 생명이 태중에서 살해되는 낙태를 법이 허용하고, 출생 후 산모의 환경적인 요인과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살해, 유기되는 현실이 지속되는 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요원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만물 중에 사람의 생명만큼 소중한 건 없다. 성경은 사람의 생명은 천하와 바꿀 수 없을만큼 소중하다고 했다. 그런 귀한 생명을 살해하고 유기하는 범죄를 저지른 일차 책임이 산모에게 있지만 이런 현실을 방관하고 외면해온 국가와 사회의 책무 또한 가볍지 않다. 그런 점에서 정치권이 뒤늦게라도 관련 법안의 조속한 처리에 나서기로 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법과 제도가 만능은 아니다. 법보다 중요한 건 국가와 사회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각자의 삶 속에서 실천하도록 하는 일이다. 특히 한국교회는 입으로는 생명 사랑을 외치면서도 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관심과 노력을 소홀히 했음을 반성하고 생명 사랑·존중 운동에 앞장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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