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독교에 대한 정당한 역사 평가 주장한 진실화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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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김광동 위원장이 “대한민국 역사에서 기독교의 역할이 정당히 기록돼야 한다”고 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지난 9일 ‘6.25 전쟁: 한국 기독교의 수난과 화해’를 주제로 연 발표회에서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이 성공국가로 진입하게 된 것은 한국 사회의 기독교 확산과 개신교적 제도 및 정신의 내면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기독교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1880년대 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와 한 역할에 대해 “한반도에서 수백 년 이어진 미신과 토속 신앙의 극복, 봉건적 계급제도, 남녀차별, 사농공상적 신분제도와 차별 폐지”를 첫 손가락으로 꼽았다. 그 결과 “근대적 기본권 개념과 천부인권적 자유에 입각한 개인의 시대를 여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1885년을 전후로 가장 고립된 폐쇄, 낙후체제인 한국에서 펼쳐진 기독교의 활동은 문명사적 전환과 대한민국 대 비약의 시점”이라는 말로 기독교가 이룬 위대한 업적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했다.

그는 또 기독교가 3.1 운동, 독립협회 운동, 만민공동회 사건, 물산장려운동 등을 주도한 점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정동교회와 배재학당을 기반으로 했던 이승만 대통령이나 평양의 조만식, 이승훈 등 민족 지도자도 모두 기독교적 기반에 입각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어 “신의주 의거나 황해도 신천투쟁 및 공산주의를 대상으로 한 반공투쟁의 주역들도 거의 기독교였다”면서 “6.25 전쟁 당시 희생을 입었던 서울 신당교회, 충남 병천교회 등 기독교는 지난 140년간 반봉건투쟁과 반식민투쟁은 물론, 전체주의에 대항한 반공산투쟁의 선두에 섰다”고 평가했다. 그런 과정이 근대 문명적 대한민국을 만드는 초석이 되었고 기독교가 그 최전선에 있었다는 게 김 위원장의 평가다.

김 위원장의 말은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서론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근현대 140년 대한민국 역사에 기독교의 역할과 대규모 희생을 일체 담고 있지 않다”며 문제를 제기한 그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을 뒤에 쏟아냈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기독교가 특히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 싸웠던 것과 대규모 희생에 관한 기록이 단지 순교 관련 교회들과 교단별 기록으로만 존재하며 국가 사회적 역사에서는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이 여전히 공산 전체주의로부터 명백한 위협을 받는 것은 물론 북한에서는 우리 민족 2천 만 명 이상이 인권유린 상황에 놓여있다고 언급하며 “이런 상황을 보면 기독교의 역할과 집단희생의 역사가 묻혀져 있고 잊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언어도단적”이라고 표현했다.

김 위원장이 이날 발표회에서 전한 내용은 그동안 정부와 교육계 등이 외면해온 진실을 학자적 양심으로 토로한 것이어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과거의 역사에 대한 진실 규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부기관의 수장이 이를 인정하고 그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사실 대학교수나 학자가 이런 주장을 했다면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진실·화해위 위원장 신분으로 특정 종교 관련 자리에 서서 이런 발언을 쏟아내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종교 편향이란 비판에 휩싸일 수도 있고 공적임 임무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그걸 김 위원장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독교계가 주관하는 자리에서 기독교가 과거부터 국가와 사회에 한 일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규정한 건 이 모든 걸 각오하고 진실을 밝히려 작심했다는 뜻이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2005년 5월 국회에서 관련 기본법이 통과되면서 그해 12월에 1기 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리고 뒤이어 2020년 ‘진실화해법’이 통과되면서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2020년 12월 10일 출범했다. 국민의 힘 추천 몫 상임위원으로 활동해온 김 위원장은 2022년 12월 10일 2대 위원장으로 임명된 후 첫 현장 행보로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이 기독교인 양민을 학살한 호남 지역의 교회를 방문해 눈길을 끌었다.

진실·화해위가 모든 과거사를 다 다루는 건 아니다. 해당 위원회가 다루는 과거사의 범위는 국내외 항일독립운동과 국위를 선양한 해외동포사, 해방이후 부터 한국전쟁 발발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과 권위주의 통치 시기의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 등에 국한돼 있다. 과거를 들춰내려는 데 주안점이 있는 게 아니라 진실 규명이 목적이다.

일제 강점기와 8.15 해방. 대한민국 건국과 6.25 한국전쟁 등 민족사적 격변기에 한국교회가 한 역할과 업적은 국사책에 몇 줄로 평가해 담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위대했다. 그러나 정당한 평가는커녕 소홀히 취급되거나 무시되기 일쑤였다. 특히 지난 문재인 정권의 교육부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배우는 한국사 교육과정에 기독교가 근현대사에 끼친 선향 영향력에 대해선 지극히 짧고 단편적으로 기술한 반면 우리 역사에 접점이 없는 이슬람을 더 크게 평가해 교계의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자유민주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전체주의에 대항했던 기독교의 역할과 집단희생에 대한 진상규명 및 정당한 역사기록과 교육은 대한민국이 현재 맞이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은 물론 올바른 미래를 지향해가는 토대이자 힘”이라는 말로 모든 걸 함축했다. 진실·화해위 위원장이 기독교가 이 땅에 한 일에 대해 역사가 정당하게 평가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말은 단순한 개인의 의견 표명 수준을 넘어 국가적 책무의 무게감까지 느껴진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기독교에 대해 국가적 진실 규명과 화해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