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오락 영상물에까지 스며든 ‘PC’ ‘젠더’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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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동화에서 본 인어공주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른 배우가 나오는 영화 ‘인어공주’가 지난달 24일 국내에서 개봉됐다. 만화영화로 유명한 디즈니가 ‘인어공주’를 34년 만에 실사판으로 제작한 건데 인어공주 역에 흑인 가수 할리 베일리가 캐스팅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그런데 이 논란의 본질이 단순한 인종 문제에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보다는 어린이들의 꿈과 환상을 함축한 동화를 디즈니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으로 포장하려는 것에 불편한 시선이 모아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디즈니가 원작과는 다르게 흑인 여가수를 인어공주 역에 캐스팅한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영화 팬들이 해시태그 #나의에리얼이아니다로 반대 운동에 나선 건 그런 배경이 있다.

디즈니의 대표 상품인 ‘마블’도 논란의 한 가운데 있다.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어벤저스’ 등 영웅들이 등장하는 시리즈는 온 가족이 함께 시청하는 대표적인 오락물이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자녀와 함께 집에서 ‘마블’을 시청하다가 동성애 키스신이 너무 자주 나와 민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토로한다. 이런 시청자들의 항의가 디즈니에 대한 거부감을 넘어 손절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디즈니는 최근 들어 ‘PC’를 자사 모든 콘텐츠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어공주, 백설공주 등 동화 원작에 나오는 백인을 유색 인종으로 바꾸거나 극 중에 동성애 장면을 자주 등장시키는 게 대표적인 예다. 최근에 제작된 영상물에서 그 수위가 점점 높아지면서 덩달아 시청자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급기야 디즈니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PC’가 주정부와 충돌하는 일도 벌어졌다. 미 플로리다 의회가 5~9세 학교에 동성애 교육을 금지하는 ‘게이 교육 금지법’을 통과시키자, 디즈니가 공개적으로 반대를 표명하고 1조20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까지 철회한 것이다.

플로리다 주가 동성애 교육 금지법을 발효했을 때 디즈니는 처음엔 침묵했다. 그러다 논란이 되자, 주 정부에 대한 투자 계획을 전면 중단했다. 이런 정치적인 행보는 미국 내 보수진영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았다. 지난해 여름에는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에서 나오는 안내방송 문구인 ‘신사, 숙녀, 소년, 소녀 여러분’을 젠더(Gender)를 중립적으로 바꾸겠다며 ‘모든 꿈꾸는 분들’로 바꿔 동성애를 노골적으로 옹호한다는 지탄을 받기도 했다.

‘PC’는 모든 표현에서 인종·민족·성·언어·종교 차별 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정치사회적 운동이다. 이 ‘PC’가 백인과 유색 인종간의 차별이 여전한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문제는 이것이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에 그치지 않고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언행으로 비치는 데 있다.

다양성의 공존을 중시하는 나라인 미국에서 시작된 ‘PC’는 갈수록 전 세계로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에 가장 영향이 두드러진 게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온라인 소통에 국경이 없어진 지금 이들 아시아 국가들은 ‘PC’가 추구하는 ‘젠더’ 열풍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유행에 민감한 콘텐츠 업계가 드라마·영화·게임·만화 등의 분야에 ‘PC’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사실 디즈니가 처음부터 ‘젠더’를 앞세운 회사는 아니었다. 창업자인 월트 디즈니는 애국심이 투철하고 크리스마스 때 성경 구절을 읽는 등 기독교 신앙이 돈독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에 등장한 CEO들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사회 운동의 일환으로 이해해 정치적 논쟁에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디즈니의 이미지마저 바꿔놓았다. 그런 점에서 디즈니가 백인 원작을 흑인으로 바꾸고 동성애를 영화의 소재로 삼는 건 정치 사회적 논쟁을 상업화해 이득을 보려는 마켓팅 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

문제는 ‘젠더’를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오락물에 무분별하게 집어넣어 그런 오락물을 접하는 어린이의 정서에 심각한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유아용 애니메이션 ‘머펫 베이비즈’에서 주인공들이 남녀 복장을 뒤바꿔 입고 나오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이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들에게 의도적으로 ‘트렌스젠더’를 부각시켰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이런 디즈니의 무분별한 ‘PC’ ‘젠더’ 마케팅에 시청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기업 이미지와 함께 엄청난 재정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젠더’를 선택한 디즈니에 많은 부모들이 결별을 선택한 건 자업자득인 셈이다.

다양성과 차별의 문제는 최근 미국 사회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정치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PC’에 입각해 난민을 대거 수용했다가 사회 혼란이 가중되고 국민의 삶이 저하되자 ‘PC’를 일종의 역차별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차별하지 말자는 ‘차별금지법’에 왜 기독교가 들고 일어나 끝까지 반대하는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 주장과 다르다고 보편적 정서를 차별 혐오로 여기는 편향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다.

‘PC' ’젠더‘를 오락 영상물에 끌어들이는 업체 입장에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옳은 선택이라고 자위할 것이다. 그러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최소한 어린이의 정서 함양에 해악은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갔어야 했다. 그것이 양심이고 대중에 대한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