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래의 문 열되 과거의 문 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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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 초청돼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하는 3국 공조와 협력을 재확인했다. 또 히로시마 한인 동포 원폭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한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추모비(碑)를 찾아 헌화했다.

윤 대통령은 2박 3일간의 방일 일정 중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등 G7 정상회의 참가국 정상들과 만나 양자 및 다자 협력을 약속했다. 회의 마지막 날인 21일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와 연쇄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도 회담하는 등 분주한 일정을 소화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방일 일정 중 언론이 가장 주목한 건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추모비를 찾아 헌화하고 묵념한 일이다. 역대 한국 대통령으로서 처음 있는 일이고 한·일 두 나라 정상이 함께 이곳을 참배한 것도 처음이다. 한·일 정상이 셔틀 외교를 복원하면서 양국 간에 얽힌 과거사를 치유하는 게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라는 데 공감한 것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시다 일본 총리가 한국인 원폭 희생자들 앞에 머리를 숙인 것에 대해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기시다 총리도 “한·일 관계에서도,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라고 화답했다.

두 나라 정상이 한인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장소에 나란히 선 모습은 지속적으로 과거사를 부정해 온 일본 정부의 달라진 자세를 보는 것 같아 아무래도 조금은 낯설고 이채롭다. 가슴 아픈 과거를 직시하고 치유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두 나라 사이엔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런 만큼 보여주기식이 아닌 실질적인 후속 조치로 이어지는 게 중요하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이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일본은 패전했고 우리 민족은 비로소 일제강점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았다. 그러나 당시 히로시마에 거주하던 한인 약 14만 명 중 3만여 명이 안타깝게 희생됐다. 겨우 목숨을 건진 수만 명의 한인도 피폭에 따른 심각한 부상으로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히로시마에 거주하던 한인들이 원자폭탄에 사망하거나 심각한 피폭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 원인은 일제가 이들을 강제로 징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적절한 치료와 배상은커녕 지난 78년간 한국인에 대한 일본 사회의 모진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워야 했다.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와 함께 한인 원폭 희생자 비를 참배할 때 한인 원폭 피해자 10명과 동행한 건 이런 특별한 의미가 있다.

윤 대통령은 앞서 G7 정상회의 첫날인 19일에 히로시마의 한 호텔로 한인 동포 원폭 피해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 동포들이 원자폭탄 피폭을 당할 때 우리는 식민 상태였고, 해방, 그리고 독립이 됐지만 나라가 힘이 없었고 또 공산 침략을 당하고 정말 어려웠다”며 고난의 현대사를 짚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동포들이 이렇게 타지에서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정부, 국가가 여러분 곁에 없었다”라며 고개를 조아렸다.

나라가 망해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고 국민이 고통과 슬픔을 겪는 현장에 고국이 함께 하지 못했다는 한국 대통령의 첫 번째 사과에 한인 원폭 피해자들은 “늦었지만 기쁘다. 큰 위안과 힘이 된다”고 반겼다. 그러면서 과거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것을 주문했다.

일본은 지난 1954년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에 평화기념공원을 조성했다. 세계의 평화를 기원한다는 의미에서다. 일본이 이곳을 평화공원으로 조성한 목적은 평화의 상징이란 이미지와 함께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숨기고 피해자라는 걸 부각하려는 의도도 있다.

한인 원폭 희생자를 기리는 비석은 이 평화공원 가운데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다. 1970년에 겨우 세워졌지만, 오랫동안 공원 밖에 방치되다 1999년에야 공원 안으로 옮겨졌다. 일제 식민치하에서 강제로 징용당해 원폭에 희생당하고 목숨을 부지해 오며 온갖 차별과 냉대를 겪어야 했던 동포들에겐 이곳이 ‘평화’의 상징이기보다는 아픔과 고통의 장소일 수밖에 없다.

그런 장소를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방문해 함께 한국인 희생자 비 앞에 고개를 숙인 장면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없지 않다. 윤 대통령을 만난 한인 원폭 피해자들이 “늦었지만 기쁘다”고 한 것처럼 복잡미묘한 감정을 떨쳐내기 어렵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과거사를 계속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한일 양국이 미래의 문도 열었지만, 과거의 문도 결코 닫지 않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를 위해 과거사의 복잡한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다는 걸 강조한 것이다.

역사의 화해는 가해자의 진솔한 사죄와 반성 없이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사죄와 반성 뒤에 용서가 이뤄져야 비로소 화해란 표현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한·일 두 정상이 함께 한인 원폭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장소를 방문해 나란히 고개 숙인 장면은 분명 양국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만하다. 다만 이것이 한일간의 과거사 정리의 마침표가 아닌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