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을 선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민께서 일상을 되찾으시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사실상 코로나19의 종식을 알렸다.
엔데믹 선언에 따라 중대본은 6월부터 코로나19 위기 경보를 ‘심각’에서 ‘경계’로 조정해 적용하기로 했다. 다음 달 1일부터 확진자 격리 의무가 사라지고 환자들이 밀집한 병원급 이상 의료 기관과 입소형 취약시설을 제외하곤 모든 곳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정부가 사실상 코로나19가 종식됐다고 판단한 건 지난 5일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적 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를 해제한 데다 국내 상황이 크게 호전됐기 때문이다. 최근 4주간 하루 평균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7명, 치명률은 0.06% 선으로 떨어지는 등 병증에 대한 위험도가 낮아진 반면, 의료 대응 역량은 충분하다는 게 방역 당국의 설명이다.
정부의 코로나19 엔데믹 선언은 코로나19가 더 이상 두려운 감염병이 아니란 것과, 우리 사회가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2020년 1월 20일 이후 무려 3년4개월 만에 코로나 비상사태에서 벗어나게 된 감회가 자못 크다.
먼저 지난 3년 4개월간 우리 사회를 덮친 코로나19의 길고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집단감염이 일어나는 현장마다 제일 먼저 달려가 헌신적인 수고를 아끼지 않은 의료진과 무엇보다 당국의 과도한 방역지침에도 묵묵히 거리두기를 실천한 국민의 인내와 희생이 없었다면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의료진의 눈물겨운 헌신과 국민의 무한 희생은 정부가 제때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 짐이 더 무거웠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대책을 무색케 하는 갖가지 규제조치로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그래놓고 선거 때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풀어 세금 잔치를 벌였다.
마스크 수급에 실패해 국민이 약국 앞에 줄지어 서게 하고 제 때 백신 확보를 하지 못해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면서도 백신 미 접종자에 대한 식당·마트 출입금지 조치와 같은 기본권 제한을 너무도 쉽게 했다. 결혼식, 장례식 등 관혼상제 규제는 정부가 국민의 일상을 얼마나 쉽게 차압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사례가 한국교회엔 비일비재하다. 국내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초기에 대구 신천지 신도들 중에 집단 감염이 발생하면서 당국과 언론이 한국교회를 타깃으로 삼아 무차별적인 공격을 해댔다. 확진자가 한 명도 안 나온 교회에서 예배드렸다는 이유만으로 고발당하고 교회가 강제 폐쇄되기도 했다.
그중 최악은 주일예배 등 각종 예배를 비대면 방식으로 바꾸도록 정부가 조처한 일이다. 헌법이 정한 종교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억압을 감염병 확산으로 한 데 묶어 틀어막았다. 그래놓고도 ‘K-방역’이란 이름으로 자화자찬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치적으로 내세웠다.
윤 대통령이 중대본 회의에서 지난 정부의 소위 ‘K-방역’에 날선 비판을 쏟아낸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 기반 방역이 되는 것”이라면서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리스크가 있다고 하면 그걸 최우선으로 해서 즉각적인 조치를 해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고 이념적, 정치방역을 해서 국민들이 피해를 봤다”고 했다.
지난 정부의 ‘K-방역’이 일정 부분 성과를 냈더라도 그건 국민의 무한 희생을 담보로 한 것이기에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한 일은 못된다. 다만 정부도 지난 정부의 잘못을 무조건 비판만 할 때는 아니다. 싸우면서 닮는다는 말처럼 과거의 전철을 똑같이 되풀이 한다면 그 비판이 비수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코로나19보다 더 큰 규모의 신종 감염병이 찾아올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제대로 된 감염병 대책을 내 논 적이 거의 없다. 새로운 질병이 발생할 때마다 허둥대며 뒷북을 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철저한 관리와 점검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정부의 코로나19 종식 선언이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드는 걱정이 있다. 코로나19 확진자는 최근 들어 수가 감소하고 치명률도 낮아진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1주일 사이에 10만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고 최근 한 달간 239명이 목숨을 잃었다. 오미크론 하위 변이 바이러스가 여전한데다 지난해 유입된 ‘원숭이두창’의 국내 감염 사례도 잇따르는 상황이다. 결코 안심할 때가 아니란 말이다.
이제야말로 국민 각자의 자율 방역이 더욱 중요해졌다. 당국도 대중교통이나 다수가 운집하는 실내에선 나와 타인을 위해 마스크쓰기를 계속 권장할 필요가 있다. 마스크 착용 의무가 없어졌다는 게 모두가 마스크를 벗으라는 신호는 아니지 않겠나. 한국교회가 이럴 때 매주일 예배만이라도 마스크 착용, 손 씻기 등 기본적인 방역 수칙을 잘 지키는 것으로 국민 자율 방역의 본을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