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혈연관계와 상관없는 다양한 형태의 생활공동체를 인정하고, 이를 법률적으로 보호하도록 하는 ‘생활동반자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성년이 된 두 사람이 상호 합의에 따라 생활을 공유하며 돌보고 부양하는 관계를 ‘생활동반자’ 관계로 규정한 건데 교계는 이 법안이 헌법이 정한 가족의 개념을 허물어뜨릴 위험요소가 다분한 데다 궁극적으로 동성혼 합법화에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사람은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다. 용 의원은 “혈연·혼인 상관없이 함께 생활하고 돌본다면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국가에 의해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보장받고 각종 사회제도의 혜택과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은 해소되기에 우리 국민은 더욱 자율적이고 적극적으로 가족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용 의원이 밝혔듯이 이 법안 입법 취지는 ‘혼인 부부’를 중심으로 하는 현행 가정법상 법적 가족 개념이 다른 형태의 생활공동체에 주거, 의료, 재산, 분할 등에서 불이익·차별을 주고 있으니 법적으로 동등하게 만들겠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성인 2명이 합의해 동반자 관계가 되면, 동거·부양의 의무와 함께 혼인에 준하는 법적 권리를 부여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문제는 이 법안에 규정된 ‘생활동반자관계’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상관없이 똑같이 인정하는 점이다. 혼인이 아닌 다양한 가족형태를 법적으로 보호하는데 주안점이 있는 것처럼 포장했으나 궁극적으로는 동성 간 결합을 합법화하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대다수 국민은 ‘생활동반자관계’라는 용어 자체가 낯설다. 이 단어가 서구에서 쓰이는 시민결합(civil union), 시민동반자(civil partnership) 등의 용어를 그대로 번역해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랑스 등 유럽 일부 나라가 이것으로 비혼 동거뿐 아니라 동성 간 결합을 합법화한 사례로 볼 때 지향점이 어디인지 빤히 들여다보인다.
이 법안이 처음 국내에 알려진 건 지난 2014년이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이 수 차례 입법 발의를 시도했으나 기독교계의 반발 등으로 실제 발의는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진 의원은 당시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을 추진하면서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을 모델로 비혼 동거나 동거계약 관계를 합법화하는 데 주안점을 뒀으나 끝내 무산됐다. 그런 점에서 용 의원 등의 입법 발의는 9년 만의 부활인 셈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4월에 국회에 이 법률의 제정 권고안을 냈다. 법적 가족 외에 실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생활공동체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법률 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한 건데 헌법의 정신과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우리나라는 법적 혼인 관계를 규정한 법률혼 외에도 실제 혼인 관계를 유지하는 남녀에 대해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하는 ‘사실혼’을 인정하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안’에서 규정하는 재산분할청구권이나 결별시 손해배상청구권은 모두 ‘사실혼’이란 테두리 안에서 이미 법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굳이 ‘생활동반자법’이 꼭 있어야 할 이유가 뭘까. 사실혼으로도 인정받을 수 없는 동성 커플에게 법적 부부의 지위를 부여하기 위한 은밀한 목적이 숨겨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교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동반연과 진평연 등 500여 단체들은 지난 4일 발표한 성명에서 “비혼 동거와 동성결합을 합법화하려는 생활동반자법안 발의를 규탄하며 당장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법안의 목적이 “혼인·혈연 관계가 아닌 동거를 합법화하려는 것”이라며 최종 목표가 동성혼 합법화에 있다는 의심을 숨기지 않았다.
교회언론회도 “(생활동반자법은) 헌법에도 어긋나는 것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를 만들어서 그들을 보호하려다 오히려 이상한 방향으로 가게 돼, 동성결혼법의 징검다리가 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가족제도 해체를 가져올 것이 뻔하고, 그로 말미암아 아동들에게 심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법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생활동반자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법사위 등을 거쳐 본회의에 상정될지 미지수다. 기독교계가 거세게 반발하는 데다 일부 친동성애단체 외에 대다수 국민은 입법 취지조차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도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굳이 예민한 사안에 손을 댈 필요가 없다. 당 차원에서 법 추진을 공언했던 민주당마저 동성 커플에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에 반발 여론이 거세자 이성간 비혼 동거만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 가치관을 조사했는데 국민의 78.9%가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아무리 진보 성향의 국회의원이라도 대놓고 동성혼을 합법화하자고 나설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권익을 옹호하는 척하면서 동성혼 합법화라는 카드를 뒤에 숨기고 있는 걸 국민이 모르겠나.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이런 법안은 자진 철회하거나 자동 폐기됨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