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 의롭다고 여기시다(2)

오피니언·칼럼
기고
  •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2. 구원의 시대

최더함 박사

여기서 잠깐,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계획하신 구원을 처음부터 다시 각색해 보겠습니다.

1) 먼저 구약시대에서 하나님은 구원의 모든 계획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에게 적용키로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었습니다. 율법은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한 하나의 조건이자 구원의 방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지키면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지키지도 못할 율법을 왜 유대인들에게 주시고 지키라고 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을 따로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누구도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인간의 죄가 얼마나 뿌리 깊은 근원적이고 치유 불가능한 것인가를 깨닫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에 의하셔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임을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해 깨닫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복음의 그림자요 예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치면 율법은 복음의 모델하우스에 해당합니다.

2) 드디어 신약시대에 접어들면서 율법 안에 예고되었던 메시아가 나타났습니다. 그분이 바로 인간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시자마자 절대 불변의 구원의 법칙을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자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이외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다른 이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행 4:12).

사도 바울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소리쳤습니다(행 16:31).

이로써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오늘 소개한 본문 롬 3:21은 “이제는”이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헬라어 원문은 ‘뉘니 데’(Νυνι δε)인데 ‘뉘니’는 ‘이제는’이고 ‘데’는 ‘그러나’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이 단어를 ‘but now’로 번역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은 이 단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지금 이 시대가 얼마나 은혜로운 시기인지 알고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에 사는 구약 백성들이 아닙니다. 더욱이 우리는 율법을 직접 수여 받은 유대인들도 아닙니다. 유대인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이름도 없는 하나의 이방인들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구원의 복음이 들여와 우리 귀에 들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내 귀에 복음이 들리게 하시기 위해 수 없는 세월 동안 복음 전도자의 발걸음과 함께 하셨고 산을 넘고 강을 헤치고 바다를 건너고 도중에 수많은 전쟁과 살인과 저주와 방해와 핍박의 공포를 지나 여기까지 복음의 걸음이 당도케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3. 의롭다 하시다

알다시피 구원을 설명하는 여러 방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복음으로 부르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도록 하십니다. 이것을 ‘소명’이라 합니다. 이때 택한 자녀들은 성령의 ‘조명’하심과 ‘세례’를 통해 말씀을 ‘믿게 되고’ 그동안 죄인으로 살아왔던 삶을 뒤돌아보며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 죄인이었는가를 깨달아 ‘회심하고 회개하고’ ‘거듭나고’ 드디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우리가 다룰 바로 이것,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칭의’(justfication)라고 하는 것입니다. 칭의는 두 가지 방면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1) 먼저, 칭의란 일단 ‘의롭다 함’입니다.

이것은 의로워서 의롭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조건 일방적으로 의롭다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종의 특별사면입니다. 사면이 되면 모든 전과가 소멸되고 원상회복됩니다. 죄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지은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불의의 사고로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면 그 사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사면을 통해 형 집행을 면제받은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택한 자녀에게 행하신 일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느 날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다음, 우리더러 이제 ‘무죄’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마치 법정에서 판사가 선언하신 것과 같다 하여 이를 ‘법정적 선언’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선언의 특징은 절대로 되물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무죄 선언으로 사면을 받은 사람이 다시 같은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묻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다루는 무죄 선언은 아담으로 인한 ‘원죄’에 대한 죄책이 사라진 것을 말합니다. 원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그가 더 이상 지옥 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또 이렇게 반문합니다. “그렇다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입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은 무조건 의롭다 하심을 받고 이 땅에서 복된 삶을 누립니다. 이때 이 사람이 다시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못하도록 성령님이 도우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천국에 이를 때까지 구원의 길에서 이탈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도의 견인’ 혹은 ‘구원의 보존’이라 하는데 다음에 다룰 것입니다. (계속)

#최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