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우리나라는 8·15 해방 66주년, 건국 63주년을 맞는다. 식민지와 전쟁을 치른 나라로서는 전례없이 큰 경제성장을 이뤄낸 대한민국의 발전상은 굶주림에 신음하는 북한과 달리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한 데 힘입었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 시장경제와 ‘성경’과의 연관성을 연구한 경제학자 박동운 명예교수(단국대)를 만나 성경 속 시장경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성경은 매우 훌륭한 책으로, 글자 하나하나도 모두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쓰셨다”고 고백하는 박 교수는, 광주 출신으로 거시경제학을 전공했고 20여권의 경제학 저서를 집필했다. 그는 “지난 2천년간 종교 설립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소유와 가족을 반대했다. 그러나 오직 살아남은 종교는 ‘소유’와 ‘가족’을 지지한 종교 뿐”이라는 하이에크의 말을 인용하며 “성경은 저에게 시장경제 교과서”라 강조했다.
-8·15 건국 당시 우리나라가 시장경제를 택한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고, 기독교와의 관련성은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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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운 교수는 얼마 전 ‘우리는 지금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는 칼럼으로 관심을 모았다. ⓒ이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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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후 한반도는 경제체제 면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각축장이었습니다. 그 성격은 건국에서 나타났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주도의 사회주의 국가, 남한은 이승만 주도의 자본주의 국가가 들어선 것입니다. 이승만이 자본주의 국가 미국에서 공부했고,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시장경제를 택한 것은 ‘건국의 아버지’가 자본주의를 신봉했고,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자로서 성경 속에서 시장경제의 원리를 발견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저에게는 아주 훌륭한 질문입니다. 저는 시장경제가 우리를 잘 살게 해준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우선 ‘시장경제’가 무엇인가 간략히 설명하지요. 저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같은 뜻으로 사용합니다. ‘자본주의’라는 말은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이 1821년에 처음 사용한 후 칼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와 대비되는 뜻으로 사용해 좋지 않은 말로 전락했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가 오기도 전에 사회주의가 사라져 지금은 자본주의보다는 시장경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시장경제는 국가가 생기기 전 ‘저절로’ 생겼습니다. 이를 놓고 하이에크는 ‘시장경제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 되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 시장경제는 저절로 생겨나서 존속하지만
사회주의는 인위적으로 계획해 멸망한다
시장경제에는 원리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 몇 가지라면 사유재산제, 자발적 교환, 가격 기구, 선택의 자유, 기업설립의 자유, 경쟁, 법치 등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경제 주체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자 자유롭게 활동합니다. 그래서 시장경제는 우리를 잘 살게 해줄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유는 사회주의를 ‘인위적으로 계획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장경제에 관한 책을 쓰면서 크리스천으로서 저는 오래 동안 이런 질문을 가졌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는데 왜 기독교는 세계 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을 김진홍 목사님께 던지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하시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독생자를 보내시어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셨기 때문’이라고. 이것이 정답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경제학도인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시장경제가 우리를 잘 살게 해주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있듯 기독교도 시장경제 원리를 내포하고 있어 세계 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는 꼭 10년간 글을 준비했지요.”
-기독교가 내포한 시장경제 원리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먼저 ‘소유권 인정’이에요.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분가하면서 땅을 고르는 장면이 창세기에 나오지요? 소유권에 대해 나오는 최초의 성경 구절입니다. 시장경제의 핵심인 소유권을 기독교는 인정합니다. 이외에도 평등, 노동, 가족, 법치, 자유, 돈벌이 등이 있습니다. 제 책에 자세히 나와있지요.”
-그 책, <성경과 함께 떠나는 시장경제 여행>에서 아브라함, 다윗, 예수님 등 성경 위인들을 CEO로 해석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듣고 싶습니다.
“CEO란 한 마디로 어느 분야의 대표적인 지도자를 뜻한다고 봐요. ‘위인’이나 ‘CEO’나 같은 뜻이 아닐까요? 로리 베스 존이 쓴 JESUS CEO(최고경영자 예수)라는 책도 있고요. 저는 기독교가 세계종교로 발전한 결정적 이유는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의 계획이지만, 구약 시대부터 서기 313년 로마의 국교로 선포되기까지 10대 CEO의 지도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간략히 설명하지요.
첫번째 CEO 아브라함―순종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다
두번째 CEO 야곱―자손이 별처럼 많아지게 할 12지파의 아버지가 되다
세번째 CEO 요셉―430년간 이집트 종살이를 통한 믿음의 연단 기회를 마련하다
네번째 CEO 모세―이집트 탈출과 가나안 정복을 이끌며 하나님의 법을 전하다
다섯번째 CEO 여호수아―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땅 분배를 마무리하다
여섯번째 CEO 다윗―이스라엘을 통일하고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준비하여 기독교 국가의 기틀을 다지다
일곱번째 CEO 솔로몬―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여 기독교의 기틀을 다지다
여덟번째 CEO 예수―가르침으로 기독교의 기반을 닦다
아홉번째 CEO 예수의 열 두 제자―예수의 가르침을 사방에 전도하다
열번째 CEO 바울―예수의 가르침을 알리는 데 몸을 바치고, 로마 전도에 성공하여 기독교가 세계종교로 가는 길을 닦다
저는 이 분들, 기독교의 10대 CEO를 중심으로 <작은 성경과 경제 이야기>라는 책을 써 놓았는데 아직 출판이 안 되고 있어요. 제 모든 글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데도 말이에요. 좀 도와주세요(웃음).”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 20:1-16)’로 평등, 성과급, 노사관계, 나눔 등 다양한 경제논리를 풀어내셨는데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예수님 가르침은 거의 비유인데,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친절하게 해설까지 곁들이셔서 깨달을 수 있는 경우도 많지요.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대표적인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 ‘처음이 나중 되고, 나중이 처음 되는’ 시장경제의 원리
실로 성경에는 노동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요. 하나님은 천지창조 편에서 ‘노동은 하나님이 주신 의무’라는 것을 강조하셨어요.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는 ‘일자리는 사용자가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셨지요.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는 말씀으로 성과급 논리와 ‘베풂’의 의미를 풀어주셨어요.
또 ‘꼴찌가 첫째 되는 것’을 놓고 ‘첫째 되는 품꾼’들이 노사분규를 일으킬 뻔했지만 ‘계약’을 내세워 해결하셨지요. ‘그대는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계약 내용, 다른 말로 법으로 노사분규에 맞서셨습니다. 시장경제에서 ‘법치’가 중요하듯이. 예수님의 해법은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자유방임은 인간의 탐욕과 함께 가진 자들에 의한 불공정 경쟁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론이 아닌 신앙으로 실제 이를 제어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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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함께 떠나는 시장경제 여행>. 저자인 박 교수는 “신학적 배경이 없어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하지 않으려 노력했다”며 “추천사를 써 주신 손봉호 교수님으로부터 내용에 대한 꼼꼼한 지도를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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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장경제를 오해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시장경제의 특성인 자유방임이 탐욕을 불러와 약육강식의 세계가 오리라고 염려하는 점이지요. 그러나 시장경제의 운용체계를 들여다보면, ‘법치’가 바탕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계명을 봅시다. 십계명은 성경에 나타난 법 가운데 구속력이 가장 강한 법입니다. 십계명은 4와 5계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정형 명령입니다. 어마어마한 강조 표현법이지요. 예를 들면 8계명인 ‘도둑질하지 말라’를 철저히 지킨다면 세상에 탐욕이 발붙일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인간의 탐욕을 줄이는 데 기독교의 역할이 크다고 저는 믿습니다.
-시장경제로 우리나라가 발전을 이뤘지만,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 등 최근 부작용도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개선 방안을 찾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지금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빠르게 이뤄지는데 이유는 두 가지라 생각됩니다. 하나는 고용 증가 없는 성장, 다른 하나는 산업구조가 제조업 중심 저임금에서 지식·정보·기술 중심 고임금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제 진단이 맞다면 성경에서 양극화 개선 방안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 성경적 복지는 ‘기쁜 마음’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것
-최근 국가 전체적으로 복지 논쟁이 한창입니다. 성경적인 시장경제와 복지의 방향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제가 젊었을 때,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광주 변두리에 살 때 가까운 교회를 갔어요. 그런데 목사님이 ‘기독교는 공산주의와 같다’는 논지로 열심히 설교하시는 거예요. 당시에는 성경 지식도 얕고 해서 그냥 넘어갔지요. 지금도 기독교를 공산주의와 비슷하게 보는 목사님들이 계시지 않나 생각해요. 큰 잘못이지요.
성경을 보면 기독교가 공산주의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2장과 4장 등 초대교회 탄생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초대교회 공동체 형성 과정에서는(성경에 공산(共産)이라는 표현은 없는데) 공용(公用)과 공유(公有)가 바탕이 됐습니다.
이는 칼 마르크스 사상과 다를 것 없습니다. 마르크스는 ‘능력에 따라 모든 사람들로부터, 필요에 따라 모든 사람들에게(to each according to his needs, from each according to his ability).’ 이 말은 ‘능력 있는 사람들로부터 빼앗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는 뜻입니다. 이런 논리로 마르크스는 ‘공용, 공유, 공산, 평등분배’를 내세운 공산주의를 주창했습니다. 따라서 공산주의를 기독교와 비슷하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기독교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35장 5절, 로마서 15장 26-27절, 고린도후서 9장 7절 등을 보면 기독교는 남을 위한 베풂은 ‘바치고 싶은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와도 거리가 멉니다.
진정한 복지정책은 성경적 복지, 곧 기쁜 마음으로 베푸는 복지입니다. 국가는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선별적 복지’를 실시하고, 기독교인들이 ‘기쁜 마음으로 하는 복지’에 참여하면 세상은 훨씬 밝아질 것입니다. 더군다나 정치가들이 정치적 포퓰리즘에 사로잡혀 사회주의식의 평등분배를 목적으로 하는 복지정책은 나라를 망치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