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감옥 안에서 활동
다. 교육활동과 서적실
우남은 감옥서장 김영선(金英善)의 도움을 받아 1902년 10월에 옥중에서 학교를 개설하였다. 이 학교에서 그는 학식이 있는 동료 죄수들과 함께 글을 깨우치지 못한 어린이 13명과 어른 40명(옥리포함)에게 한글과 한문 그리고 영어, 산학, 국사, 지리 등을 가르쳐 주고 또한 성경과 찬송가도 가르쳤다.
우남은 김영선 감옥서장을 설득하여 ‘옥중학당’과 ‘서적실’을 설치하고 운영하였다. 한성감옥 안에 우남이 운영한 학교와 도서실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선학(先學)들의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 이 옥중학당은 우남의 발의에 의해 설립된 학교였던 것이다. 우남은 양의종(양기탁), 신흥우, 유성준 등과 함께 옥중학당을 운영하면서 한글, 국사, 윤리, 산수, 세계지리, 영어, 일어, 문법 등 과목 이외에 성경과 찬송가를 가르침으로써 이 학교를 기독교 전도의 장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이 학교는 한국 형정사 및 교육사상 획기적 의의를 지닌 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
서적실과 관련하여 이것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상해와 일본 등지에서 구입하여 차입해 준 기독교 및 청말 중국의 제도개혁 관련 서적, 그리고 각종 정기 간행물로써 꾸며진 도서관이며, 이 서적실에는 (1904년 8월 현재) 52종의 한글, 국한문 책자와 223권의 한문책자가 모두 523권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약 3분의 2는 기독교 관련 서적들이었고 나머지는 상해의 광학회에서 출판한 세계역사, 지리, 국제법 그리고 청말 제도개혁에 관한 책들이었다. 이 서적실은 기독교 및 청말의 제도개혁에 관한 한 궁중에 있던 왕립도서관 집옥재(集玉齋)에 비해 손색없는 알찬 도서관이었다.
이처럼 우남은 옥에 있는 동안 옥중학교를 설치하여 가족을 대신하여 옥에 있는 어린이들과 동료 죄수들을 가르쳤는데 이는 우남의 변화된 사상이 교육 활동으로 실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남은 출옥 후에도 계속해서 교육 활동에 헌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전덕기 목사가 세운 상동청년학원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여 YMCA에서 지내던 3년간 그리고 105인 사건을 계기로 망명한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시간 이 외의 30여년 대부분의 시간들은 무지한 백성들을 기독교로 깨우치고 가르치는 일에 자신을 헌신하였던 것이다.
라. 저술활동
우남의 문장력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다. 소년시절 유학을 연마함으로 다져진 그의 한문 문장력은 이미 뛰어났으며 또한 배재를 다니는 동안 배우고 익힌 영어 실력이 외에 여러가지 다양한 서양 지식들과 이미 매일신문과 제국신문의 제작에 참여하여 필봉을 휘두른 경험이 있었고 한성감옥에서 영어생활을 하는 동안 다양한 집필 활동을 하게 된다. 한시 쓰기를 비롯하여 영문서 혹은 한문서의 번역 그리고 영한사전의 편찬 그 외에 가장 중요한 것은『독립정신』의 기록이다.
우남은 자신이 읽은 중국책 가운데서 미국인 선교사 알렌(Young J. Allen)과 중국인 채량강(蔡兩康)이 펴낸「중동전기본말」(中東戰紀本末: 청일전쟁사) 이라는 역사책을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이 책은 이승만이 출옥한 다음 1917년에 하와이에서「청일전기」(淸日戰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옥중에서 우남이 벌인 작업 중에서 가장 야심적은 것은 영한사전을 만드는 일이었다. 1903년 초에 그는 미국 선교사들이 차입해 준 영어 대사전 및 화영사전(和英辭典: 일어-영어사전)을 가지고 영한사전 편찬 작업을 개시하였다. 1904년 초까지 이 작업은 전 작업량의 1/3 가량(즉, A항부터 F항까지)이 끝나 있었다. 만약 이 작업을 끝을 맺었다면 이 사전은 우리 한국 역사상 최초의 영한사전으로 우리나라 영어교육 사상 빛나는 금자탑으로 남았을 것이다. 우남이 영한사전 편찬 작업을 끝맺지 못한 이유는 작업 도중 러일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러일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우남은 사전을 만드는 일을 일단 중지하고『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저술하기 시작하였다. 우남은 이 책을 6개월 만에 탈고하였는데 이 책의 내용의 대부분은 그가 옥중에서 꾸준히 제국신문(帝國新聞)에 투고하였던 논설들이었다. 이렇게 옥중에서 탈고된 우남의 처녀작-대작『독립정신, 獨立精神』은 1910년 3월에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출판되었다.
옥중에서 언제나 바빴던 우남은 망중한을 이용하여 한시를 지었다. 그가 옥중에서 지은 120수의 한시는 그의 말년에 우전 신호열의 현대에 번역 및 주석과 함께 체역집(替役集: 징역을 대신하는 시 모음)이라는 제목의 한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우남이 지은 한시(漢詩) 가운데에 「빈대」라는 것이 있는데 이 시의 제목만 보아서도 많은 빈대가 우글거린 당시 감옥 안의 열악한 상황을 살필 수 있고 또한 이는 때로는 감옥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지은 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음은 우남이 쓴 「빈대」라는 한시이다.
따뜻하면 기운펴고 차면 오무려
천정으로 바닥으로 오르 내리네
하얀 벽을 돌고 돌아 아롱을 찍고
마루 틈을 헐어보면 몰리어 있네
모기와는 연이 멀어 혼인 안 되고
벼룩이나 이쯤은 곁방사릴세
네 집은 어쩌다 복 많이 받아 백아들 천 손자 대를 잇느냐
(이승만, 이수웅 옮김,『이승만 한시선』 p.93)
우남은 이처럼 빈대 이외에도 벼룩, 모기, 벌, 매, 박쥐 등 감옥 안에서 쉽게 눈에 띄고 생각나는 많은 것들을 소재로 시를 지었는데 이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세 가지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하나는 우남은 이미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정서가 풍부한 분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우남은 감옥이라는 극한 상황을 유모로, 문학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둘은 우남의 한문 실력이 월등하였고 그의 문장력이 얼마나 뛰어났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시대에 우남의 감옥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 했는가 또 그가 당시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남은 출옥 후에도, 독립운동을 하면서 또한 대통령 직무를 보는 가운데도 때때로 시를 지어 남겼는데 이는 모두 우남의 당시 생각들과 사상, 느낌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들이다. 우남은 감옥 안에서 감옥 밖에 있는 보통사람이 하는 일보다도 몇 배의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이것은 그의 기독교 신앙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감옥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남은 옥중에서 10여 권의 책을 번역 내지 저술하고 신문, 잡지에 80여 편의 논설을 집필, 기고할 수 있었다. 우남이 감옥에서 기록한 옥중잡기를 통해서 우리는 우남이 옥중에서 많은 양의 서역(書譯)을 해낸 사실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우남은『중동전기본말(中東戰紀本末)』,『만국사략(萬國史略)』,『만국공법(萬國公法)』및『주복문답(主僕問答)』등 한문 내지 한역본(漢譯本) 책자들을 한글로 번역하였고,『독립정신』이라는 거질(巨帙)을 탈고하였다. 그 외에『제국신문』과『신학월보』에 각각 75편과 6 편의 논설을 기고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체역집(替役集)』이라는 자작 한시 모음집, 그리고『적주채벽(摘珠採璧)』이라는 애송 시집을 편찬하였다. 그는 옥중에서도 대단히 창조적인 일에 몰두하여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특별히 『독립정신』과 같은 책은 명저 중의 명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정신』에는 이러한 우남의 심오한 정치 철학과 조국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과 원대한 비전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비전은 독립투쟁과 건국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데 그대로 실천되었던 것이다. 우남은 이 책에서 ‘나라가 없으면 집도 없고, 집이 없으면 나와 부모처자와 형제자매 그리고 후손들이 어디서 살며 어디로 가겠는가?. 그러므로 나라의 백성이라면 신분이 높든 낮든 안녕과 복지가 순전히 나라에 달려있다’ 라고 하였다.
우남은 조선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처방으로 대외개방, 새로운 문물도입, 외교노력 강화, 국가주권 보호, 도덕적 각성과 충성심 배양, 그리고 모든 백성에게 자유 보장 등 6개 항을 제시하고 국민 모두가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호소하였다. 이미 100여 년 전에 쓰여 진 독립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지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들에게는 세계화 시대에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실천해야 할 행동지침이며, 냉혹한 국제사회의 생존경쟁을 헤쳐나 갈 방향을 제시한 전략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 지면 관계 상 일부 각주는 생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