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이하 본부)는 지난 3일부터 제주도 서귀포시에 소재한 라파의 집을 이용하는 만성 신부전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관광 프로그램을 재개했다고 27일(목) 밝혔다.
지난 2007년 만성 신부전 환자들에게 치료와 휴양을 제공하기 위해 문을 연 라파의 집은 혈액투석으로 이틀에 한 번 하루 네 시간씩 치료를 받으며 힘겨운 투병생활을 이어가는 환자들과 오랜 간병으로 지쳐있는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제주도 주요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는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해당 프로그램이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가 3년 만에 재개하면서 라파의 집 이용객들이 진정한 제주의 봄을 만끽할 수 있게 됐다.
포근한 봄 햇살이 내리쬐는 지난 3일 오후 경주에서 온 만성 신부전 환자 조현일 씨(만 60세, 남)는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투병 이후로는 혈액투석에만 매어 사니까 봄 되면 남들 다 가는 벚꽃구경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며 라파의 집 방문을 통해 투병 이후 처음으로 제주를 찾았다는 조 씨는 "간만의 봄나들이에 혈액투석의 피로감마저 말끔히 가시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용객들을 실은 관광버스가 유채꽃 명소인 녹산로에 도착하자 조 씨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담으며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이날 녹산로는 만개한 유채꽃밭이 끝도 없이 펼쳐지며 샛노란 잎을 하늘거리고, 벚꽃나무는 연분홍빛 꽃비를 흩날리며 봄의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50대 중반 무렵 신장에 물혹이 생겨 신장기능이 저하되는 다낭성 신장질환을 진단받은 황경무 씨(만 73세, 남)는 벌써 20년째 투병 중이다. 그는 “라파의 집을 다녀가면 한 두 달간은 마음이 훈훈하다”고 했다. 투병 전 대식가였다던 황 씨는 혈액투석을 시작한 이후 20kg 가까이 체중이 감소하고, 그만큼 신체능력도 급격히 떨어지게 되면서 오랜 세월 삶을 비관해 왔다고 고백했다. 녹산로의 유채꽃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황 씨는 "만성 신부전 환자들의 지친 인생에도 오늘처럼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이날 저녁에는 코로나19로 잠정 중단되었던 제주 라파의 집의 치유 프로그램도 재개됐다. 오랜 투병으로 지친 환자와 가족들의 심적 활력을 찾아주기 위해 웃음 치료 레크리에이션이 진행된 것이다. 장기기증 희망등록자인 김희경 전문 강사의 도움으로 뇌 건강 훈련에 좋은 박수치기와 종이접기 놀이가 이어지며 강의실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발길을 끊었다가 오랜만에 라파의 집을 찾았다는 김연희 씨(만 70세, 여)는 20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이어오다 6년 전부터 혈액투석을 시작했다.
김연희 씨는 “올 때마다 이렇게 즐거우니 라파의 집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고맙다”고 했다. 김 씨는 자주 병원 신세를 지는 탓에 화성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남편과 떨어져 서울에 살고 있지만, 제주도만 오면 자신만을 위한 별장이 있다는 생각에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장기기증 문화가 곧 활성화되어 본인처럼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희망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본부 후원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편, 제주도 서귀포시 하신상로 169번지 한라산 중턱에 자리한 라파의 집은 투석 치료실을 갖추고 전문 의료진이 상주하며 매월 50~60명의 환자를 수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라파의 집을 이용한 환자는 총 7,500명으로, 만성 신부전 환자라면 누구나 한 달 간 머물며 치료와 휴양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에서 혈액투석 치료를 받아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신장장애인은 무려 8만 9천 여 명이나 된다.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신장이식을 받는 것이지만, 평균 대기기간이 2,196일이나 될 만큼 이식률은 현저히 낮은 상황으로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 제고가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