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선교와문화)가 최근 복음과도시 홈페이지에 ‘소명을 깨우는 전도’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김 교수는 “영혼구원은 전도의 언어가 아니다. 의아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전도의 또 다른 말이 구령사역인데, 왜 영혼구원이 전도가 아니란 말인가”라며 “만일 전도가 개인의 영혼이 죽은 뒤에 천국에 가도록 하는 것이라면, 성경은 그러한 의미로 영혼구원을 말하지 않는다. 영혼과 육신을 나누는 이원론은 성경적 사상이 아닐뿐더러, “영혼구원”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베드로전서에서도 그러한 내세주의적 구원을 가리키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영혼구원은 신자들이 현세의 고난을 감당하며 인내와 정절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리는 삶이다. 고난과 유혹 속에서 세상과 타협하려는 ‘육신’의 정욕에 굴복하지 않고, 일터에서(벧전 2장), 가정에서(벧전 3장)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는 삶을 통해 결국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영혼의 구원”이라며 “따라서 영혼구원은 (자연스럽게 전도의 열매를 수반할 수 있지만) 전도의 언어라기보다는 성화의 언어이자 제자도의 언어”라고 덧붙였다.
그는 “복음주의 운동은 회심과 전도의 중심성을 일깨운 소중한 유산을 계승해왔다”며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복음전도를 좁은 의미의 영혼구원이나 사후천국행에 머무르게 하거나, 혹은 이미 구원받았다는 자기 확신에 안주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통치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도라는 복음의 더 큰 비전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어 “오늘날 가장 중요한 교회 갱신 운동인 선교적 교회론을 제안한 레슬리 뉴비긴은 근대 서구사회가 기독교로부터 멀어지고 세속화, 이교화한 것은 바로 복음이 공적 영역으로부터 후퇴했기 때문”이라며 “기독교 신앙이 내면의 평안과 사후의 위안을 위한 사적 영역에 머물고, 과학과 소비주의가 삶의 지식과 의미를 채워가자 사람들은 기독교의 역할과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실천은 그 실천의 궁극적인 목적(telos)에 부합해야 한다”며 “복음전도는 실천이다. 따라서 전도활동은 복음을 전하는 궁극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과 실천을 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전도가 창조세계를 지으시고 죄로 인해 부패했으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치유하시고 갱신하시는 하나님의 새 창조에 참여케 하는 것이라면 전도는 좁은 의미의 영혼구원 그 이상의 메시지와 사역을 담아야 마땅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런 의미에서 전도를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삶으로의 초대, 또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응답하는 삶인 제자도로의 초대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종종 전도는 기독교 신자를 만드는 것이며, 제자도는 신자가 된 다음에 주어지는 옵션처럼 취급되곤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음을 기억하라!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으며, 그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사람들을 초대하셨다. 그것은 기존의 생활방식에 평안과 위안을 제공하는 보조수단으로서의 종교적 메시지가 아니었다. 하나님 나라의 선포는 우리 삶의 방향과 목적을 전환하라는 요청이었다”고 했다.
이어 “전도와 깊은 관련을 지니는 단어로 ‘중생’ ‘거듭남’ ‘새로운 피조물’ 등이 있다. 이 단어들은 결코 하나님 나라나 제자도와 거리를 둘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며 “이 단어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더 큰 목적에 필요한 조건으로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는 “복음전도는 일차적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가게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더 큰 목적과 소명을 위한 출발점일 뿐”이라며 “복음전도는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공동선을 위한 새로운 삶을 살도록,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변화된 가치와 더 큰 목적을 갖고 살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복음전도는 사람들이 회개와 믿음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새 창조에 참여하는 청지기적인 삶을 살도록 일깨우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소명을 깨우는 전도’는 오늘날의 자아중심주의 사회에 대한 대안적 해법이 될 수 있다. 현대인에게 좋은 삶의 기준을 나누는 가치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다. 이에 근거해서 성윤리는 개인 성향의 문제가 되었고, 인간의 사회적 활동은 취향이 중심 원리가 되었다”며 “자아중심주의 사회에서는 자아실현이 인생의 목적이고 그 목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개인의 성향과 취향은 절대 존중되어야 할 성역”이라고 했다.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인생과 세계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며, 우리의 모든 활동(먹든지 마시든지)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자 기준임을 고백하는 것”이라며 “물론 인간의 개별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도 충분히 수용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민족과 계급에 종속되지 않는 개인의 소중함과 존엄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자아중심주의와 취향의 세계관에서 혼란스러워하는 현대인에게는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 더욱 크고 견고한 소명과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소명과 목적이 없으면 인생은 방향을 잃는다. 변덕스러운 개인의 성향과 취향만을 추구한다면 우리의 삶은 원래 설계된 고유한 궤도에 안착할 수 없다. 우리는 좌절과 낙심에 빠진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의 인생을 설계하시고 선한 계획을 갖고 계시다고 선포하며 하나님 나라의 비전 안에서 은사와 소명을 발견하고 계발하는 삶으로 초대해야 한다”며 “또한 부족한 것이 없고 강한 이들에게는 그들에게 주어진 조건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선포하며 감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각종 선한 일에 참여하는 삶을 살도록 초대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소명은 의무나 강요가 아니다. 소명은 인간이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유효한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에 존엄한 인간적 삶의 조건”이라며 “그 조건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가운데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