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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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경건주의 영성’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찬양과예배학과 교수)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1517년 비텐베르크 성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며 촉발된 종교 개혁은 이후 교회의 여러 영적 신앙 운동들이 일어나는 계시가 되었다. 유럽은 종교 개혁을 지지하는 나라들과 반대하는 가톨릭 진영과 나눠지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에 이르는 모든 것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교회의 양분 이후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혼란한 시기를 맞이했다. 심지어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던 유럽 사회에서 교리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중 어디에 속하는지에 대한 질문들은 사회생활과 실생활에도 영향을 끼쳤다.

교회 내부에서도 교회의 정통성, 즉 정통주의 신학의 교리적 강조에 중점을 두게 되었으며, 교회 설교와 선교도 기독교인의 태도와 실천보다는 정통성을 강화하는 교리의 인정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이에 점차 개신교의 제도와 교리 중심화로 신앙의 실천, 변화의 경험을 막는 것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으며, 독일 루터교회의 내부에서 경건주의(Pietism)로 발전해 점차 전 유럽 전역과 영국과 미국의 교회들로 퍼져갔다.

경건주의는 창시자인 필리프 슈페너(Philipp J. Spener, 1635-1705)와 그의 젊은 동역자인 아우구스트 필리페(August H. Francke, 1663-1727) 등을 중심으로 경건주의 사고, 독서와 실천, 상업 활동, 사회 개화, 종교적 경험, 할레 대학 등의 학교 설립까지 광범위의 영향력을 발휘해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영향을 주었으며, 계몽주의 발전의 기독교적 배경을 마련했다. 경건주의는 신학적 개념보다는 기독교인의 생활과 실천을 강조하는 사상이자 종교 운동이었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까지 지속된 경건주의 운동은 교회의 죽은 정통과 냉담한 영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어 영적 운동을 염원하는 ‘모라비안 형제회(Moravian Brethren)’ 등에 영향을 주었다. 모라비안들은 1722년 가톨릭의 탄압을 피해 진젠도르프(Nikolaus L. Zinzendorf, 1700-1760) 백작의 영지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그곳에 모라비안 공동체를 형성했다. 이후 복음주의자들이었던 모라비안 교도들은 유럽 각지로 흩어져 영향을 주었는데, 요한 웨슬리(John Wesley)가 감리교회를 창설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1727년경 당시 헤른후트(Herrnhut)는 신앙에 있어 예정설, 거룩함, 세례(침례) 등 여러 다른 견해로 서로 다투며 상처받고 분열된 상태였다. 이곳에서 진젠도르프는 집회를 통해 연합과 사랑과 회개를 촉구했으며, 계속된 기도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성령의 강한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공동체마다 회개와 기도 운동이 일어났으며,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계속되었다. 성령으로 무장되기 시작한 모라비안들은 모일 때마다 예배를 드리며 기도와 찬양을 함께 불렀으며, 은혜가 넘쳐 거리에서도 복음을 전하며 찬양을 불렀다. 하나님을 영적으로 경험하고자 갈망하는 모라비안 예배 공동체는 영적 예배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며,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종교 개혁 이후 교회가 신앙적 갈등 속에 빠져 있을 때, 18세기에 일어난 경건주의 운동은 수동적인 교리 중심의 신앙을 적극적이면서 마음으로 기도와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고자 한 복음주의적인 성령 운동이었다. 이는 18세기 이후 성령 운동을 확장시켜 은사주의에 영향을 끼쳤으며, 감리교회와 성결교회 그리고 더 나아가 오순절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또한 종교 개혁과 정통적 교리 중심의 교회에 반대하며 예배에 있어서 수동적이 아닌 하나님을 경험하려는 능동적인 예배와 찬양을 지향했다. 이를 통해 기독교 공동체에 기도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회개와 치유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복음주의 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초대교회의 말씀과 성찬으로 하나 되었던 기쁨의 예배 공동체는 AD 500년에서 16세기 종교 개혁의 시대까지 예배의 역동성을 잃어버리고 사제 중심의 형식적이고 수동적인 예배를 거치면서 예배의 본질이 사라져버렸다. 이 시기에 나타난 수도원 영성 회복 운동은 종교 개혁까지 초대교회의 영적 유산을 이어가려는 노력이었다. 종교 개혁 이후, 종교 개혁자들을 중심으로 초대교회의 유산을 회복시키면서 다양한 믿음의 성향대로 종파들이 나누어졌으며, 말씀 중심의 교리 중심화는 이후 하나님을 향한 소통과 체험을 중시하는 경건주의 운동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다. 경건주의는 이후 발생하는 여러 복음주의 집회와 기도 운동, 그리고 현대예배와 찬양의 임재 신학 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종교 개혁 이후 정통성 확보에 집중하게 되면서 교리에 치중하던 교회는 참된 예배 공동체가 소유해야 할 영적 능력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예배의 역동성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예배자로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본질 회복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경건주의는 영적 갈급함과 하나님을 경험하기 원하는 예배자들의 반응으로 일어난 기독교 예배 영성 운동의 흐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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