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첫 책의 첫 장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하나님이 무엇과 비슷하신지에 대해 이어지는 모든 내용이 기초로 두는 근거다. ‘창세기 1장은 그 자체로 인간의 믿음에 가장 중요한 질문과 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케네스 터너 교수(토코아 풀스 대학 구약 성경학 및 성경 언어학)와 그레그 데이비드슨 교수(미시시피 대학 지질학 및 지질공학과)는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신학적으로 가장 앞서고 가장 중요한 문헌인 창세기 1장를 주목하면서 하나님 성품의 다양한 측면을 제시하는 의미의 층을 탐구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성경의 첫 장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창세기 1장은 신생 이스라엘 국가를 위해 기록되기 전에 고대 연설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반복했을 가능성이 있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고대에서 기원했지만 창세기 1장의 메시지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된 문화권의 의식에도 스며들었다. 그 메시지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가 먼 시대와 땅에 살았던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물질세계의 본질과 특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이 세계를 존재하게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인간의 가장 깊은 질문을 다룬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현대에 와서 이 본문의 적절한 해석에 대해 설전이 벌어지면서, 너무 자주 신랄한 어조가 이 이야기의 풍부함과 아름다움을 압도했다. 그 갈등이 주로 성경의 영감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싸움이라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겠으나,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불협화음은 성경의 권위와 신성한 영감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내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스스로를 성경무오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을 구분하기 위해 파 놓은 강화된 신학적 참호들과 함께 견해가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 이 하나의 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 불일치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고 우정이 깨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욥기나 일반적으로 성경에 대한 그레고리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에 오면 논의가 갑자기 바뀐다. 창조 이야기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대한 전형적인 대화를 들으면, 창조 이야기를 이해하는 방법이 하나뿐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더욱이 창세기 1장을 잘못 이해하는 것은 성경 전체를 잘못 이해하는 것과 같은 절박감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다. 성경을 진정으로 믿는다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의 참된 의미에 충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톨킨의 말을 차용하면, 신실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지배할 하나의 해석을 찾으려 한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그러나 만일 우리가 창세기 1장도 많은 진리의 층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각 층이 다른 층들을 보완하고 확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풍부함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창세기 1장에 접근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나 이상의 시각, 강조 또는 주제가 동시에 유효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한 구절이 각각의 독자에게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는 신비로운 것 또는 일종의 자유로운 해석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성경 주제에 대해 논리적 불일치 때문이든 성경 본문에 추가된 인간의 편견 때문이든 언제나 단순히 잘못된 해석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