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소속의 일부 목사들이 지난 6일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며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그러자 곧바로 이튿날 같은 교단 소속의 단체들이 이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등 감리교단 내 진보·보수 간의 갈등이 재연되는 분위기다.
발단은 기감 소속 목사 343명이 서울 감리회관 앞에서 윤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감리회의 후예이자 시대의 예언자로 부름받은 우리는 윤석열 정권의 폭정과 만행으로 인한 역사의 후퇴를 이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표된 시국선언문의 핵심은 윤석열 대통령의 즉각 퇴임이다. 그 이유로 △굴욕적 대일외교, △검찰 독재, △남북갈등과 전쟁 위기 고조 등을 들었다.
이들이 굴욕외교라고 규정한 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를 말한다.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배상을 요구하는 판결을 내렸는데 정부가 대신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방식으로 일본 정부와 타협한 게 굴욕이란 거다. 국민 정서상 그렇게 받아들일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런데 지적한 내용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뿐 아니라 독도 영유권, 일본군 ‘위안부’ 합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배출 등의 문제를 통틀어 “윤석열 정권의 종일매국(從日賣國) 행위”라고 규정한 부분이다.
독도 영유권, 일본군 위안부 합의 등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와는 별개 사안이다. 윤 정부가 일본 정부와 어떤 합의를 한 바가 없고 의심할만한 증거도 없다.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배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 떠도는 의혹을 기정사실화해 대통령 퇴진론으로 몰아가는 건 적절치 않다.
두 번째로 문제 삼은 게 ‘검찰 독재’다. ‘시국선언’은 “전임 정부 주요 인사와 정치적 경쟁자에 대해서는 압수수색과 소환을 되풀이하며 혐의 뒤집어씌우기에 여념이 없지만,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범죄와 불법에는 눈을 감거나 진실을 감추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라고 했다.
성직자들이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견해를 밝히는 게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이들 눈에 현 정부가 ‘전임 정부 주요 인사와 정치적 경쟁자에 대해서는 압수수색과 소환을 되풀이하며 혐의 뒤집어씌우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으로 비친다 해도 그 자체를 탓할 순 없다. 문제는 공정한 잣대다.
윤 정권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허물고 ‘검찰 독재’로 전락시켰다는 주장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주관적이다. 야당인 민주당의 주장과도 판박이다. 문 정부 때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검찰이 휘두른 사정의 칼날이 지금보다 못하다 할 수 없다. 그래도 ‘검찰 독재’라 하지는 않았다.
‘시국선언’에 적시된 ‘정치적 경쟁자’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지칭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 대표의 각종 의혹은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재직 시에 있었던 일로 현 정부가 아닌 문 정부의 검찰이 조사에 착수한 사안이다. 대부분의 의혹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불거졌다. 이를 경쟁자에 대한 대통령의 정치적 탄압으로 몰아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시국선언’에 유독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윤 정부가 남북 갈등과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는 부분이다. “지금 윤석열 정권 아래서 남과 북의 대결은 격화되고, 전쟁의 위기는 고조되고 있다”며 현 남북 관계의 모든 책임을 윤 정부에 돌리는 태도다.
윤 정부가 지난 문 정부와는 다르게 북한의 도발에 강경한 어조로 대응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남북 사이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갈등을 유발한다는 주장을 어찌할 수 있나. 논리대로라면 우리 군이 북을 향해 도발하고 있다는 건데 연일 ICBM을 발사하며 핵무기로 쓸어버리겠다는 집단이 누군가.
감리교바로세우기연대·감리회거룩성회복협의회·웨슬리안성결운동본부가 즉각 반박에 나선 건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들 단체는 감리회 일부 목회자들이 발표한 ‘시국선언’에 대해 “현 정부 입장을 국익과는 상관없는 반일몰이로 매도하고, 정부와 국민 간의 관계를 이간하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교단 내에서는 감리회 소속의 1만 2천명이 넘는 목사 중에 불과 3백여 명의 이름으로 발표한 문건이 감리교회 전체 입장인 양 세상에 비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감리교가 지향하는 방향성과 전혀 다른 몇몇 목사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감리교 내부 사정은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문제를 놓고 보수와 진보 진영 간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NCCK 탈퇴 문제를 놓고 복잡한 시기에 ‘시국선언’ 문제까지 터지면서 교단 내 갈등이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됐다.
군사독재 시절 성직자들의 ‘시국선언’은 어둠에 항거하는 한 줄기 빛이었다. 성경도 옳은 건 옳다 아닌 건 아니라 하라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정착한 오늘의 현실에서는 정치 편향이란 오해를 사기 쉽다. 성직자가 정치적 이념에 사로잡혀 누군가의 ‘나팔수’를 자처하게 되면 한국교회가 불행해진다. 그러지 않으려면 복음의 관점에서 사리를 분별하고 진리 위에 바로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