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독교선교횃불재단(유승현 원장)이 주최하는 2023 1학기 횃불회가 지난 3일부터 오는 5월 22일까지 ‘리셋의 시간, 감(感) 있는 교회와 목회’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10일 2주차에선 차준희 교수(한세대학교 구약학)가 제1강의로 ‘리셋의 시간, 감사의 영성을 회복하라: 공감의 영성’(예레미야 8:18-9:1), 제2강의로 ‘리셋의 시간, 감사의 영성을 회복하라: 고독의 영성’(예레미야 12:1-6) 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공감의 영성’이라는 주제로 제1 강의을 한 차준희 교수는 “우리는 때로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하고, 섭섭해하고, 답답해하고, 힘들어한다. 그러나 내 마음을 몰라주는 상대의 마음을 한 번쯤 헤아려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역지사지’로 본다면 내 마음을 몰라주는 상대의 그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공감이다. 공감 지수가 높다면 세상살이가 한결 가벼워지고 내가 사는 세상이 그래도 살만한 세상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오늘 공감 지수가 남다른 신앙의 선배를 만나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오늘 본문 구절을 보면 예레미야서 안에서 가장 강력하게 예레미야 선지자가 겪는 내적 번민을 잘 묘사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결코 자기만족의 고난을 냉소적으로 구경만 하지 않으며 그의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었다. ‘비반의 대상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담겨져 있었다. 냉소적인 비판은 상처만 남는 법이다. 가르침에도 사랑 혹은 무시가 드러난다. 따라서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더욱더 조심하고 진정성 있는 애정이 담겨야 한다”고 했다.
이어 “예레미야는 전쟁이 발발하기고 전 평화 시기에 앞으로 닥칠 전쟁의 소리를 미리 들었으며 백성들에게 ‘곧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고 외쳤다. 그는 깨어있는 심령으로 전쟁의 소리를 앞당겨 듣고 있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를 미친 사람으로 여겼으며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에 곧 닥칠 멸망을 혼자 느끼고 있었으며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었기에 그는 ‘눈물의 예언자’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동족이 겪는 절망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당신의 백성을 이렇게 내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리셨다고 절망적으로 부르짖었다.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했을 때 예루살렘의 처참한 상황이 예레미야애가에 반영되어 있다. 유다 왕국의 멸망은 하나님께도 충격이었다. 하나님은 심판은 즐기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대홍수 심판에서도 엄청난 충격과 갈등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심판을 결행하셨다”고 했다.
차 교수는 이어 “예레미야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떠나심을 탄식하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백성들이 우상숭배로 자신을 떠남에 대해 통탄해하시는 하나님의 울부짖음도 들었다. 예언자란 하나님과 백성 그사이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백성의 말도 들어야 한다. 따라서 예레미야의 탄식은 자업자득으로 겪는 괴로움 앞에서 낙심하는 백성의 탄식과 그 백성에게 분노하시며 괴로워하시는 하나님의 탄식을 함께 느끼는 탄식이다”고 했다.
그는 “소리는 ‘청각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의 문제’이다. 음성은 단순히 소리가 아니라 관심이다. 관심이 있어야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수 있고 들어야 할 음성도 들려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픔’과 ‘백성의 아픔’에 민감한 것이 구약 예언자 가운데 예레미야만이 가지는 독특한 영성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마음과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는 예레미야 영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러한 ‘공감의 영성’은 특히 하나님을 먼저 만난 우리들에게 요구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감은 ‘하나님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감력’이 곧 ‘영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레미야가 가지고 있던 이 공감의 영성을 우리가 가질 수만 있다면 가정과 교회 그리고 직장에서도 어느 한 편에 서서 소리를 높이고 싸울 것이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의 중간에서 양쪽의 마음을 모두 느끼고 알게 되어 화해의 자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며 “한쪽의 소리만 들으면 트러블 메이커가 되고 양쪽의 소리를 들으면 피스 메이커가 된다. 서로의 마음을 감지해낼 수 있는 ‘공감 지수’, 이것이 ‘공감의 영성’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 사람의 영성의 깊이를 잴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고독의 영성’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차 교수는 “고통은 누구에게나 아프고 힘이 든다. 고통이 견디기 어려운 까닭은 고통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외로움 때문이다. 남이 대신할 수 없는 ‘1인칭의 고독’이 고통의 본질이다. 여럿이 겪는 고통은 훨씬 가볍다. 여럿이 맞는 벌은 때론 놀이와 같을 수 있다. 그러나 고통을 홀로 짊어져야 한다면 그 ‘고독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할 것이다. 고독의 고통을 온 몸으로 살아낸 예언자를 우리는 오늘 만난다”고 했다.
그는 “그 예언자는 바로 예레미야다. 예레미야서 12장 1절부터 6절은 예레미야의 여섯 가지 고백 가운데 두 번째 고백에 해당되는 본문이다. 해당 본문에서 예언자는 먼저 자신이 하나님과 변론할 때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관이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바로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라고 하나님께 따지듯이 묻는다. 이 구절을 통해 예레미야의 불평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고소의 단계’에 이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예언자는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께 ‘불평’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하나님을 ‘고소’한다. 또한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악인들을 심으시고 그들의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도록 해 주셨음을 지적하고 있다. 예레미야가 보기에 처벌받아 마땅한 악한 자들은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고난받는 쪽은 하나님에 의해 부름을 받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었던 예레미야 자신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경이 가르쳐주는 기도의 길은 어두운 감정들을 무조건 덮으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두운 감정들을 솔직하게 드러내라고 한다. 그것들을 하나님께 내보라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심오한 믿음의 행동이다”며 “인간은 하나님의 신비 앞에서 언제나 새롭게 배워야 하는 ‘영원한 학생’에 불과하다. 인생은 학교다. 태어나면서 인생학교에 입학하고 죽을 때 인생학교를 졸업하는 것이다. 따라서 배우기를 게을리하거나 거부하면 죽는 일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인간의 보호막에서 떨어져 나와 하나님 앞에 고독하게 홀로 서 있어 본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사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위로는 불완전하다. 내가 당한 슬픔과 괴로움을 함께 나눌 사람이 곁에 있어도 위로받지 못할 때가 있다. 고독의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게 느껴진다. 이는 ‘하나님의 보호막’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며 “예레미야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옆에는 하나님이 늘 계셨다. 하나님은 한순간도 사람의 옆을 떠나신 적이 없으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절대 고독 체험을 통해 인간이 홀로 있으면서도 절대적인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심을 느끼는 ‘고독의 영성’을 가르치신다. 모든 사람이 다 떠나고, 모든 것이 다 꺾여서 철저히 홀로 된 상태, 이것이 바로 ‘고독의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가 이 고독의 상태에 놓여있을 때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고 했다.
끝으로 차 교수는 "모든 사람은 결국 주변의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인생은 이별의 연속이고, 이별 훈련이다. 교우도 이별하고, 부모도 이별하고, 친구도 이별하고, 때로는 자녀도 이별하고, 그리고 배우자도 결국 모두 떠나가고, 나 혼자 남는다. 결국 누구나 홀로 남는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고독의 영성을 가지고 살다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영적 자산보다 중요한 것은 고독의 영성이다. 고독의 영성이 부족하면 고립감을 느끼고 외로움의 늪에 빠진다. 이제 고독의 영성으로 무장되어, 충실한 고독을 맛보고 지금부터 하나님 한 분만으로도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