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 아들에 대한 사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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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최더함 박사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4~18)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1~3)

1. 하나님의 가족

주님은 제자들과 헤어져야 할 때가 임박하자 제자들이 자신의 부재에 대해 근심하고 불안해할까 봐 제자들을 위로하고 믿음 안에서 확신을 주고자 노력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늘로 올라가면 그 다음부터는 성령님이 함께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니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요 14:25~28)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자신과의 이별로 인한 제자들의 슬픔을 다독거렸습니다. 이제부터 모든 일을 성령님이 대신할 것이라는 이 약속으로 인해 제자들의 슬픔과 불안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입장에서 가장 큰 확신과 위로는 이 땅에서 성령님의 도움을 받고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관심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정말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늘나라에 간다면 어떤 자격으로 간다는 것인가를 분명히 알고 싶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두 가지 확신의 대답과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약속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서 함께 살 거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이 약속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라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모아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요 14:1~4)

다음으로 사도 바울의 진술을 통해,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집에 거할 수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4~18)

위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상속자입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 된 자격으로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받아 상속자로서의 지위와 신분을 가지고 영원한 삶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2.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그런데 사도 요한은 이러한 주님의 약속과 상속권에 대한 보증들이 모두 당신의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피력합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1~3)

이 말씀에서 우리가 더욱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즉 양자가 된 사실을 선포하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미래에 누릴 축복이 무엇인가를 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도 요한은 임 말씀을 통해 우리가 지으심을 받은 궁극적인 목적을 강조합니다. 그는 구원의 정접, 곧 우리가 누리게 될 가장 높은 영광에 관해 증언합니다.

사도는 이 사실을 더욱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보라”(ίδετε)라는 단어를 채택하여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킵니다. 이 단어는 가만히 멈추어 장차 일어날 일들을 깊이 생각해 보라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놀라운 일을 계획하시고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을 깊이 생각해 보라는 함의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다른 사랑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범주에 속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고 모든 상속권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이 꿈꿀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가장 위대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알기 위해 사도는 우리에게 “보라”라고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동시에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라”고 권고합니다.

어떤 일을 깊이 생각하기 위해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중단하고 움직이지 말고 단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만약 몸을 움직이거나 다른 일을 동시에 하거나 어떤 잡념에 사로잡히면 그는 깊이, 그리고 정확하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대학입학시험장에서 문제에 집중하지 않으면 그는 정답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가장 큰 위험에 직면했을 때 소란스럽게 굴거나 위험요소를 부추기는 행동들은 다른 위험을 야기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적군이 집안에 침입하여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질 때 비밀 방에 숨은 가족들은 손으로 입을 막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도록 조용해야 합니다.

이런 장면이 복음서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느닷없이 사나운 폭풍이 몰아쳐 왔을 때 예수님은 배 뒤편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제자들조차도 배가 침몰할까 봐 두려워할 정도의 광풍이었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힌 그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셨나이까?”하고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의 소란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위엄 있는 목소리로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하시자 바다가 즉시 잔잔해지며 평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바다에는 실바람 한 점 없는 절대적인 정적이 흘렀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주님이 바람과 물 뿐 아니라 모든 자연 만물을 창조하신 주권자이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다의 사나운 물결마저 주님의 명령에 굴복하고 조용히 하라면 조용히 하는 것입니다. 실로 우리는 바람 한 점, 구름 한 점, 별들의 속삭임과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들 모두 주님의 명령을 듣고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왜 그들이 잠잠하고 조용해져야 하는 것일까요? 오직 주님에게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기 위해서입니다.

자연도 이러할진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는 우리는 얼마나 아버지 하나님께 집중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만큼 ‘집중의 능력’(Ability of Concentration)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성공하느냐 아니냐 하는 능력의 차이가 이 ‘집중’의 차이에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집중의 능력을 향상시키느냐 하는 연구들이 한창입니다. 특별히 최근의 이 대표적인 연구이론으로 ‘몰입이론’(Flow Theory)이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 연구는 두 가지 갈래에서 진행합니다. 하나는 인간이 어떤 순간에 가장 몰입하느냐, 즉 최고도의 위험에 직면했을 때 최고의 몰입도가 형성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몰입도를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하여 사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론들을 잘 활용하면 자녀들의 교육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계속)

#최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