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5일 수요일] 양 vs. 염소
전체 본문: 마태복음 24:1~26:5
읽을 본문: 24장1~2절, 34~36절, 42~44절 & 25장31~46절
24: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4: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
24: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24: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주: 그리스도 재림의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24: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24: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
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25: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25: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25: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25: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25: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25: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25: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25: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25: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25: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25: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해설과 묵상
오늘 전체 본문(마 24:1~26:5)은 ‘감람산 강화’로 잘 알려진 마태복음24–25장과 수난기사(passion narrative)로 연결하는 전환(transition) 단락인 26:1-5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감람산 강화(마24-25장)
‘감람산 강화(Olivet Discourse)’로 잘 알려진 마태복음 24-25장은 성전파괴(*주: 주후 70년에 성취됨)에 대한 예언 및 종말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 성도들이 살아야 할 지혜롭고 충성된 삶에 대한 소중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25장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종말과 역사의 종말(재림)을 서로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계십니다. 주님이 예언하신 성전의 멸망이 이를 언급하신 시점으로부터 약 40여 년 후인 주후 70년에 역사의 한복판에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 제자들의 세대가 다 가기 전에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24:34 참조). 그렇기에 예수님이 성전의 종말과 더불어 예언하신 역사의 종말(주님의 재림) 역시 말씀하신 그대로 이뤄질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굳게 믿습니다.
그러한 확신과 더불어,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과 그때에 대해 우리가 미리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겸허한 인정이 필요합니다(24:36).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때를 우리는 미리 알 수 없기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혼인 잔치를 위해 미리 기름을 준비해 놓은 다섯 처녀처럼(25:1-13), 또 주인이 맡긴 달란트로 힘껏 일을 해서 이윤을 남긴 충성된 종처럼(25:14-30) 늘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 밤 주님께 최종 결산 보고를 할 자세로 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이라 일컫는 현재의 시간을 청지기의 마음으로 살고 계신가요? 오늘 당장 최종결산을 할 준비가 되어 계시나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교리를 입으로는 부인하지 않으나 이를 ‘장롱’에 넣어 놓은 채 실제로는 회피하며 부정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벧후 3:4 참조)?
(2) 감람산 강화의 결론: 양과 염소의 비유(마25:31-46)
감람산 강화(마24-25장)의 결론으로 예수님은 ‘양과 염소의 비유’(25:31-46)를 들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의미심장한 비유를 통해 장차 재림하셔서 ‘양들’(영생을 상속받을 의인의 무리)과 ‘염소들’(영벌을 받게 될 악인의 무리)을 확실하게 구분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기준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 즉 굶주리고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를 어떻게 대했는가 입니다(25:40, 45절).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정성껏 섬기는 일은 곧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25:35-40). 한편, 그런 사람을 무시하고 배척한다면, 실은 주님을 무시하고 배척하는 것입니다(25:42-45).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25:40, 45절)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공동체의 일원, 특별히, 성도 중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베푼 작은 친절과 자비의 돌봄을 주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고귀한 섬김으로 받으십니다. 한편, 그들을 향한 냉대와 무관심을 주님 자신에 대한 냉대와 무관심으로 여기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25:40, 45절).
주변에 있는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을 섬기고 돌보는 것은 이처럼 주께서 친히 강조하신 바입니다. 또한 이는 초대교회가 복음 전파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역이기도 합니다(갈2:9-10 참조). 당신은 옆에 있는 성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한 성도를 향한 작은 친절과 관심이 곧 예수님을 향한 섬김이라는 오늘 본문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가요?
우리는 죄에 대해 다룰 때, 해야 할 바를 행하지 않은 것(omission)보다 하지 말아야 할 바를 행한 것(commission)에 더 초점을 두곤 합니다.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라면,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타인에게 상해를 가하는 것에 대해 엄중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행해야 할 바를 행하지 않은 데 대해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관대합니다. 진실을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침묵한 것과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고 따돌림 당하는 상황을 방관한 것에 대해서는 덜 심각하게 여기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힘주어 말씀하십니다(마25:45). 이 말씀에 근거해 볼 때, 우리 주님께서는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행하지 않은 것을 심각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이 뚜렷해집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를 읽으면서 저자 마태가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사상’을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잠시 생각하는 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마태복음은 행위구원론과는 사실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내일 묵상하게 될 마태복음 26장은 죄 사함을 가져오는 능력이 바로 그리스도의 보혈에 있음을 선명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8]).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 주신 주님의 말씀은 믿음과 행함 간의 거룩한 상관관계에 근거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우리의 행함이 완전하여 구원 얻는 게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참된 믿음은 살아 있는 실체여서 삶 가운데 어떻게든 표현되고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믿음은 그 믿음을 반영하는 삶의 결실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마7:15-27). 우리 삶이 완벽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삶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사실 완벽함으로부터 거리가 매우 멉니다. 우리 각자가 스스로의 삶을 솔직하게 성찰한다면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 그 사실이 매우 명확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열매를 통해 믿음의 진정성이 확인되고 확증된다는 것은 변함없는 성경적 진리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그런 뜻에서 우리 주변에 있는 이들, 특별히 고난과 좌절과 아픔 가운데 처해 있는 성도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사실 우리들 믿음의 현주소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0-21).
한 줄 기도: 주변에 어려움에 처한 성도를 주님 대하듯 섬기게 하시고, 말로만 아니라 삶으로 표현되는, 산 믿음 갖게 하소서.
** [묵상 심화를 위한 팁] 오늘 읽은 본문에 추가하여 전체 본문(마24:1-26:5)을 읽으시면 오늘 읽은 본문에 대한 이해가 심화됩니다. **
* 본 고난주간 묵상 가이드는 이충재 박사와 공저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요단출판사, 2021)에서 필자가 저술한 내용 중 pp. 286-351 부분을 발췌하여 개정했다. 출판사 및 공저자의 허락 하에 이 책의 내용 일부를 재사용함을 밝힌다.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4032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