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가 올해 부활절 연합예배와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준비하고 있다. 연합기관과 지역 연합회들 모두 ‘연합’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부활절 예배가 ‘연합’이 아닌 또 다른 ‘분열’로 고착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점이 있다.
연합기관이 중심이 된 올해 부활절 연합예배는 네 군데에서 각기 열린다. 한국교총연합은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거리 퍼레이드를 가진 후 오후 4시에 서울영락교회에서, 한국교회연합은 오후 2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광장에서 전광훈 목사 관련 단체와 함께 드린다. 그리고 2년여 만에 정상화가 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오후 3시 한국교회백주념기념관 대강당에서, 한국기독교교회회협의회는 아침 5시 반에 구세군 서울제일교회에서 각각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
부활절은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 최대 절기다. 이런 특별한 절기에 한국교회가 연합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건 오랜 전통에 속한다. 한국교회의 부활절 연합예배는 1947년 4월 6일 NCCK의 전신인 조선기독교연합회가 주한미군과 함께 서울 남산 조선 신궁터에서 드린 것이 시효다. 일제가 한양성곽을 부수고 신사를 지어 신사참배를 강제했던 곳에서 한국교회가 첫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린 건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부활절 연합예배는 6.25 전란 이후 장로교 분열 등으로 좌초 위기를 겪는 등 한동안 표류하는 시기가 있었으나 그래도 끈질기게 명맥을 이어왔다.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에도 번갈아 행사주관과 설교를 맡는 방식으로 서로의 간격을 허문 건 부활절 연합예배가 왜 한국교회 일치와 연합의 상징인지를 말해 준다.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는 시대의 고비마다 연합과 분열을 반복하면서도 70여 년이나 지속됐다. 과정마다 명암이 뒤섞여 있지만, 교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대명제 아래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하나로 연합할 수 있었던 건 부활절 연합예배가 거의 유일했다.
안타까운 건 그 ‘아름다운 동행’이 멈춰버렸다는 점이다. 2012년 한기총의 파행과 그 이듬해 WCC 10차 부산총회 개최로 보수와 진보 진영 간의 신학적 입장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면서 부활절 연합예배가 직격탄을 맞았다. 그 후 연합기관이 분열하고 이합집산하는 과정에서 나뉘고 축소된 부활절 연합예배는 최근 들어선 아예 각 연합기관별 연례행사로 굳어지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놓고 볼 때 부활절 예배에 자동으로 따라오는 ‘연합’이란 단어가 과연 적절한 수식어인지 의구심이 생긴다. 회원 교단과 단체 등 다수가 참여하는 걸 ‘연합’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연합’의 정신은 내가 아닌 상대를 표용하고 함께함으로써 그 가치가 빛난다.
올해 부활절은 어쩌면 한국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 지도 모른다. 코로나19 방역의 굴레에서 벗어난 첫 절기인 만큼 한국교회가 진보·보수의 겉옷을 벗고 한 장소에 함께 모여 부활하신 주님을 맞았으면 어땠을까. 당국의 코로나19 방역지침으로 대면예배와 비대면예배를 두고 갈등했던 한국교회가 한자리에 모여 이 모든 고난을 극복하게 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부활절 연합예배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그런데 교계는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치고도 크게 아쉬워하지 않는 모습이다. 올해는 부활절 연합예배만이라도 함께 하자는 제안을 어느 누가 했다는 얘기가 아예 없다는 점이 그렇다. 이걸 예년의 모습을 반복해도 별문제가 없다는 뜻으로 단정할 순 없지만 이대로 굳어지면 돌아오기가 점점 더 어렵다.
각자가 정해진 연례행사를 충실히 하겠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연합기관 기구 통합에 열정적으로 매달렸던 건 뭐라 설명할건가. 이런 식으로 흩어지면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등 날로 거세지는 파고를 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무엇보다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1천만 성도들의 희망이 사라지는 게 문제다.
부활절은 한국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 기독교 공동체의 축일이다. 이날을 기념해 많은 예배와 다양한 행사가 열리지만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없는 예배, 행사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런 점에서 지도자들에 의해 사분오열된 한국교회가 저마다 개최하는 부활절 연합예배가 부활하신 주님의 몸마저 찢어 나누는 듯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8.15 해방 직후 한국교회가 남산에서 드린 첫 부활절 연합예배에는 1만5천여 성도들이 참석했다. 그 안에 보수도 진보도 있었겠지만 드러내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부활절 연합예배가 지금은 마치 분열의 상징이 돼버렸다. 이걸 후대가 어떻게 평가할지가 벌써부터 고민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내로라하는 지도자 중에는 훌륭한 리더십과 능력을 겸비한 분들이 많다. 그런데 정작 한국교회를 위기에서 구해 내는데 필요한 건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겸손과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이다. 나를 내려놓지 않고 상대의 희생과 결단만을 요구해선 ‘연합’은 요원하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진정한 ‘부활절 연합예배’의 부활, 그 아름다운 동행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