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북한인권보고서’가 공개되면서 북한의 충격적인 반인권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북한 주민이 성경을 소지하고 기독교를 전파했다는 이유만으로 총살에 처하는 등 기독교인에 가해지는 박해가 한국교회엔 충격 그 이상이다.
북한은 ‘종교의 자유’가 법으로 보장된 나라라고 선전해 왔다. 남한을 비롯해 외국에서 방북하는 기독교 인사들에게 평양 중심부에 세워진 봉수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게 하고 인근에 있는 칠골교회를 보여줌으로써 주민들이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음을 과시해 왔다.
지난 2019년에 제정된 북한 사회주의 헌법은 제68조에서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자유가 법조문 상에만 존재한다는 데 있다.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 사회 질서를 해치는데 이용할 수 없다’고 명시함으로 아무리 신앙의 영역이라도 맘대로 통치 수단화할 수 있는 길을 터놨다.
2021년에 북한이 제정한 청년교양보장법 제41조에는 청년은 ‘종교와 미신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규정이 있기 전인 2019년에 열린 UPR 실무그룹 제33차 회기 제8차 회의에서는 종교를 ‘정치체제 전복 또는 공공질서를 위반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나 술책은 묵과하거나 용인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이는 북한이 선전하는 ‘종교의 자유’가 얼마나 허황된 거짓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해 놓고 사회질서, 사회안전, 도덕 등 다른 권리를 보호하는데 필요한 한도 내에서만 허용한다는 건 그 자유를 통치자 마음대로 박탈해도 된다는 뜻이다.
인권보고서는 수집된 증언을 토대로 북한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명문상의 규정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는 보장되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탈북민 등 다수의 증언자들이 북한에서 종교활동을 접해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한 게 이런 사실을 입증해 준다. 일부 증언자들이 성경책 등 기독교 관련 용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는데, 기독교 전도가 아닌 당국이 실시하는 반종교 교육을 통해서였다는 것이 북한의 본 모습이다.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해 놓고 주민들이 종교를 접하기는커녕 종교용어를 당국이 실시하는 반종교 교육을 통해 들어 알게 됐다는 사실은 북한이 종교 특히 기독교를 얼마나 적대시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런 반종교 교육이 학교 교과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졸업 후 조직생활에서도 이어진다고 하니 종교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심기 위해 국가가 북한 주민을 세뇌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충격적인 건 북한이 종교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한 사례들이 하나둘이 아니란 점이다. 한 북한 이탈주민은 2018년에 평안남도 평성시에서 18명에 대한 공개재판이 열렸는데 그중 한 명이 성경을 소지하고 기독교를 전파한 행위로 사형을 선고받고, 곧바로 공개 총살되는 것을 목격했다는 내용이 있다. 비밀리에 교회를 운영하는 이들 5명이 체포돼 공개 처형됐다는 증언도 있다.
북한이 기독교를 이토록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기독교인이 믿는 유일신 하나님이 북한의 유일신인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수령 우상화 정책에 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은 1970년 제5차 노동당대회를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대체해 김일성 ‘유일 사상체계’를 확립했다. 주체사상의 철학적 이론을 확립한 황장엽은 탈북 후 주체사상의 철학적 토대가 기독교의 유일신 교리와 접목됐음을 인정한 바 있다.
이는 북한에선 김일성 3대가 단순한 통치자가 아닌 종교적 신봉의 대상으로 신격화되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다. 이런 현실에서 북한이 평양에 세운 봉수교회 등 종교시설들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될지는 뻔하다.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보여주는 눈속임용 위장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거다.
한국교회가 북한의 기독교 탄압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상 실상을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인권보고서에 실린 생생한 증언은 한국교회가 희미하게 보고 들었던 것들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준 생생한 교본이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는 민족 동질성 차원에서 북한동포를 돕는 일에 선교적 지원과 관심을 쏟아왔다. 한때 사랑의 쌀보내기, 밀가루 지원 등에 교단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한국교회와의 인적 물적 교류를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이 거의 전담했다. 그런데 이 조그련은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고 당국이 기독교를 인정한다는 걸 내세우기 위한 북한의 핵심 권력기구의 하나지 단순한 기독교기관이 아니다.
아직도 한국교회 일각에선 이들과의 교류를 남북한 교회 일치와 연합 차원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깔려있다. NCCK가 해마다 조그련과 함께 부활절, 8.15 광복절 등에 남북교회 공동기도문을 발표해 왔던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
한국교회는 북한과 교류의 끈을 놓지 말돼 북한 주민과 당국을 혼동해선 안 된다. 북한 주민은 동포애로 품되 이들의 인권 박탈과 탄압을 체제 유지 수단으로 삼는 김정은 체재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는 말이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주장하면서 북한 당국을 향해 주민에 대한 인권 탄압 중지와 수년째 억류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적의 선교사를 석방하라고 한마디도 하지 않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보수·진보를 떠나 복음적이라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