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종교개혁가들의 성경 해석을 바르게 목회와 설교에 적용하라
하나님은 모든 시대의 하나님이다. 종교개혁의 중심인물들은 성령의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놀랍게도 과학의 시대가 열리려 꿈틀대던 16세기 루터와 칼빈과 같은 개혁가들을 부르셨다. 이들을 통해 과학기술 시대뿐 아닌 모든 시대, 모든 인류를 향한 보편적 성경 해석의 길을 여신다. 이들의 성경 해석은 AI시대의 길목에 있는 21세기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1) 기본에 충실하라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요한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16 세기 초·중반을 살다 간 인물들이다. 루터와 칼빈은 근대 과학을 향해 꿈틀거리며 역동성을 발휘하기 시작한 자연과학의 바람을 결코 피하거나 외면할 수 없던 시대를 살았다. 비록 자연과학도는 아니었으나 당대 영적 지성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루터와 칼빈은 과학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신앙적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별히 칼빈의 경우 점성술이나 천문학에 대한 관심이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기본에 충실한 인물들이었다. 하나님은 세상이나 과학보다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정통한 해석 능력이 이들을 종교개혁의 길로 이끌었다. 루터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 말하는 하나의 통일성을 잘 알고 있었다. 분명히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만을 가리키고 있다(Universa Scriptura de solo Christo est ubique). 성경에서 AI의 이상한 원리를 끄집어내려는 신학 작업은 금물이다.
(2) 간결하고 용이함(Brevitas et Facilitas)의 원리
칼빈은 성서 해석에 있어 자연과학을 결코 부정하지는 않았다. 영국 왕립 협회(Royal Society) 회원의 압도적 다수는 칼빈주의 청교도들이었다. 하지만 칼빈은 과학과 과학자 만능의 엘리트주의자는 전혀 아니었다. 칼빈에게 있어 분명한 것은 성경의 메시지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계시였다. 칼빈이 보기에 하나님의 영(靈)은 특별한 사람들만 배려한 고등 교육 기관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보통 학교를 개설하시는 분이었다. 안명준 박사(전 평택대 교수)의 칼빈의 해석학에 있어서의 간결성과 용이성(Brevitas et Facilitas)의 방법론은 칼빈의 관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모세는 지식인 뿐 아니라 무식자의 선생으로도 소명을 받았다. 칼빈은 천문학이나 기타 난해한 것을 배우려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가보아야 할 것으로 보았다. 세상의 미련한 것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십자가 역설의 주님(고전 1:18, 27)이 아니신가. AI의 탁월한 지혜가 십자가의 미련을 어찌 이해할 것인가.
(3) 자연과학에 대한 입장(“성경은 성경으로, 천문학은 천문학에게”)
자연과학에 대한 칼빈의 입장은 명료했다. 칼빈은 성경을 관점과 관심이 다른 책으로 보았다. 성경은 천문학이나 고도의 기술을 가르치려는 책이 아니었다. 즉 성경은 전문 과학 서적처럼 대할 책이 아니었다. 칼빈은 분명 자연에 대한 과학적 탐구에 종교적 동기를 부여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로 자연은 일부 일그러 지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하나님의 아름다운 책으로 본 것이다. 피조세계의 연구는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하는 훌륭한 도구였고 ‘하나님의 영광의 극장’이었다. 1645년과 그 이듬해 과학에 헌신한 사람들의 부정기적 모임으로 출발한 영국 왕립협회(The Royal Society) 회원 대부분이 청교도적 칼빈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하지만 칼빈의 해석 방법은 성경 계시가 누구에게든지 이해할 수 있게 묘사되었다는 종교 개혁 이론에 기초한다. 성령은 모든 사람을 위한 공통된 학교를 개설한 것이다. 따라서 성령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주제를 선정하였을 것이다. 즉 모세는 교육받은 자의 교사만이 아니었다.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선지자요 교사였다. 그러므로 모세는 “성경을 기록함에 있어 평범한 언어를 채택했다. 그렇다면 성경은 보통사람들을 위한 책이므로 천문학 및 다른 어려운 학문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야 할 것이다.”
시편 주석에서도 칼빈은 성경 저자들이 과학적 사건에 대해 감각이 느끼는 대로 묘사했지 과학적 용어로 묘사하려 하지 않았음을 역설한다. “성령께서는 천문학을 가르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다시 말해 가장 단순하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교훈을 내리기 위해 성령은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모세와 선지자들을 사용하심으로써 아무도 그 말씀이 모호하다는 핑계를 대지 못하게 하셨다.”
분자생물물리화학자요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과학에 대해 칼빈은 (1) 자연에 대한 과학연구에 대해 긍정적 활력을 불어넣은 인물이요 (2) 과학 연구의 장애물을 제거한 인물이요 (3) 성경을 적응(accommodation)의 방법을 가지고 이해하려 한 사람이라고 3 가지 칼빈의 공헌을 평가한 것은 정확한 묘사였다.
보통 사람들을 위해 보통학교를 개설하셨다는 하나님에 대한 칼빈의 생각은 적응의 방법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적응(Accommodation)의 방법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죄 많은 인간에게 말씀하실 때 아버지가 어린 자녀에게 말을 걸려 시도할 때 겪는 것과 동일한 문제에 부딪힌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낮추어 내려오사 우리의 연약한 점에 자신을 맞추신다. 이것은 유아원 선생님이 유아 언어로 말하는 것이나 아버지가 자녀를 돌보면서 자녀들의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나 비슷하다. 제한된 지성의 어린아이에게 그들의 이해와 경험을 능가하는 말과 개념을 사용할 경우 의사소통에 실패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이 수준에 맞는 방법이 요구된다. 이 접근 방법이 바로 칼빈의 성경 해석으로서의 적응이다.
적응(Accommodation)은 라틴어의 수사학자나 법학자들이 청중들의 상황, 구조, 성격, 지적수준, 감정 상태 등에 적응시키며, 조절하며 적합하게 진행하는 사용법이다. 오리겐(Origen), 크리소스톰(Chrysostom), 어거스틴(Augustine) 등의 교부들은 바로 이 적응의 원리를 일찍부터 이용한 인물들이었다. AI가 과연 ”소망의 이유“에 대해 신학자와 목회자, 신자와 불신자, 과학자와 어린 꼬마에게 어떤 레토릭을 발휘할지 궁금하다.
(4) 창조의 주요 구속의 주가 결코 될 수 없는 인공지능임을 전하라
아란트(Charles P. Arand)는 루터의 창조론(Luther's Thought on Creation) 강좌에서 루터의 요리문답 제 1조에 나타난 창조론과 그 신학적 의미를 탐색하면서 루터는 후기 작품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강조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아란트는 창조주와 창조물 간의 경계와 인간과 인간 이외의 동물과의 구분 그리고 하나님의 가면(Larva Dei)으로서의 피조물에 대한 루터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루터에게 있어 피조물은 존재의 낮은 질서에 속한 것에 멈추지 않는다. 피조물은 오히려 신적 선하심의 도구이다. 그렇다고 인간이나 피조물이 창조의 중심이 아니다. 루터는 철저히 인간의 믿음으로부터 출발하여 창조주 하나님께 절대적 초점을 맞춘다.
루터에게 있어 창조주 하나님은 광대한 은하수로부터 미세한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창조물을 만드신 분이다. 하나님은 무로부터 이 우주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셨다. 또한 창조주는 인간들을 다른 창조물로부터 구분한다. 하나님은 세계의 일부분이 아니요 세계는 하나님의 일부가 아니다. 이것은 과정 신학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루터의 창조 신학에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물질과 지식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듯 AI도 결코 인류의 메시야가 될 수는 없다. AI가 혹시 건강 유지와 생명 연장에 일부 도움을 줄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AI는 생명의 주인도 아니요 영생의 주인은 더더욱 아니다. AI가 창조와 구속의 주가 될 수 없음을 설교자는 명료하게 전해야 한다.
(5) 이제 학문은 중요치 않다고?
그렇지 않다. 루터와 칼빈은 신앙과 신학뿐 아니라 일반 학문에 까지 두루 정통한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수사학에도 능한 학자였다. 루터의 저술들은 문학적 향기가 나면서도 심오하다. 칼빈은 진리를 간결하면서도 용이하게 보통사람들에게까지 전하는데 능한 학자였다.
AI시대 목회자는 성경과 신학뿐 아니라 일반 은총 영역의 모든 학문에 대한 종합적 심오한 학문적 소양을 갖추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즉 AI가 갖추지 못한 신앙과 세상에 대한 바른 종합적 안목으로 정면 돌파해야 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AI시대는 적당히 목회할 수 있는 시대가 전혀 아니다. 과거처럼 얄팍한 목회나 설교적 꼼수가 인간도 아닌 AI의 평가 앞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도 AI시대의 목회 역설을 보게 된다. 종합학문적 안목까지 요구하는 신앙 진검승부의 패러독스의 길이 열리고 있다.
(6) 성령 모독의 시대를 경고하고 설교하라
AI시대는 일부 성령 모독의 현상들이 더욱 적나라하게 전개될지도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목회자들의 바른 성경 해석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성령 모독 시대는 하나님 앞에 견고한 진을 구축한다. 마귀는 AI를 그 견고한 진의 도구로 삼으려 들 것이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으로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할 주의 종이 될 것을 요구한다.
(7) 성경의 패러독스를 이해하는 일
성경은 패러독스로 가득찬 책이다. 하나님은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진리와 섭리로 인간을 영생의 길로 인도한다. 약할 때 강하고, 환란은 연단과 소망을 위한 배경이다. 선 줄로 알 때 넘어질까 걱정해야 한다. 세상은 AI의 지혜와 지식과 정치적, 경제적, 물질적 힘을 자랑하며 신이 필요치 않은 세상이 왔다고 자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경의 수많은 역설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과 다르며 인간보다 항상 크심(사 55:8-9)을 알리신다. Deus Semper Maior!(하나님은 항상 보다 더 크시도다)
6. 나가면서
포스트모던 시대 속 시작된 AI의 등장은 세상과 신앙과 신학에도 백가쟁명식 상상치도 못했던 새로운 신학 사조의 범람을 체험케 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과정신학을 넘어 천체신학(Astrotheology), 홀로그램 우주론, 다중우주론, 양자 이동, 시뮬레이션 우주론, 외계인 지적설계론 등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온갖 현대 사상들이 목회와 신학의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필자가 제안한 “자연과학에 대한 종교개혁가들의 이해, AI시대의 목회와 설교에도 타당할까”가 AI의 지혜에 대응하는 하나님의 미련일 수 있음을 기억하고 모든 하나님의 종들이 말씀과 기도와 거룩함으로 무장하여 시대를 바르게 분별하기를 기원한다. (끝)
#조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