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인권보고서를 처음 공개했다. 북한인권보고서 공개는 2016년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지 무려 7년 만으로,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중시해 온 윤석열 정부의 북한 관련 정책의 실질적인 이행 의지로 해석된다.
북한인권보고서는 2017년 이후 매년 제작·발간했으나 문재인 정부는 탈북자 개인정보 노출 우려 등을 이유로 보고서를 3급 비밀로 분류해 공개를 꺼려왔다. 보고서 발간 자체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 구실을 탈북민 신변 보호로 삼았는데 누가 봐도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실은 정부가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북한 인권 침해의 참혹상이 알려질까 봐 쉬쉬했다는 것이고, 그게 맞다면 북한 인권 탄압의 공범을 자처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북한인권보고서를 윤 정부가 처음 공개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북한 주민의 처참한 인권 유린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낱낱이 드러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이 있다. 또 북한의 인권 유린을 못 본체 눈감아 준 문 정부의 대북 굴종을 반드시 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28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지 7년이 경과 되었지만, 아직도 북한인권재단이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며 북한인권보고서 출간을 공개한 배경을 밝혔다. 그러니까 북한인권보고서 출간·배포 공개를 ‘북한인권법’의 실질적인 이행을 위한 첫 단추로 삼은 셈이다.
‘북한인권법’은 지난 2016년에 제정됐다. 첫 발의 후 법 통과에 11년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현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이 발의한 ‘북한인권법’과 더불어민주당의 ‘북한인권증진법’을 섞어 겨우 국회 문턱을 넘어선 게 지금의 ‘북한인권법’이다.
문제는 ‘북한인권법’이 2016년 9월 시행과 함께 있으나 마나 한 법이 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북한 주민의 참혹한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하자는 취지로 법을 만들었으면 북한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정책을 개발할 ‘북한인권재단’이 반드시 설립돼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이 지금까지 이사 추천을 하지 않아 7년째 재단 출범이 표류하고 있다.
‘북한인권법’의 핵심은 ‘북한인권재단’ 출범에 있다. 그런 재단의 출범을 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도 이사 추천을 미루는 방법으로 지연시키고 있는 건 말이 지연이지 실제로 재단 출범을 고의로 방해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 정부가 ‘북한인권법’을 사문화시킨 사례가 어디 이뿐인가. ‘북한인권법’엔 외교부 북한인권대사를 임명하고 법무부에 북한인권기록보존소도 두도록 규정돼 있다. 그런데 집권 5년간 북한인권대사를 임명하지 않고 보존소 예산도 10분의 1로 줄여 기능을 아예 정지시켰다. 이렇게 할 바엔 뭐하러 국회가 여야 합의로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지난 문 정부에서 북한 인권은 사실상 금기어가 됐다. ‘남북 평화 이벤트’를 구실로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4년 연속 불참한 건 국제사회에 조소 거리가 됐다.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어민 2명을 흉악범이라며 강제북송하는 데 가담한 문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지금 재판을 받고 있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이들은 북한 김정은 정권이 저지른 인권 탄압의 하수인노릇을 한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윤석열 정부는 지난 3월 6일 ‘북한인권재단’을 대신할 ‘북한인권증진위원회’를 통일부 장관 자문기구로 출범시켰다. 재단이 정식 출범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며 업무를 공백상태로 둘 수 없어서다.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전문가·대국민 의견수렴 및 공론화, 시민단체 지원 등에 관한 자문 역할 등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꼭 필요한 조치였다.
‘북한인권증진위원회’가 ‘북한인권재단’을 영구적으로 대신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야당의 이사 추천 고의 지연에 발목이 잡힌 재단 대신 ‘북한인권법’ 제정의 취지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선 이 대신 잇몸이 그 역할을 하면 된다. 인권재단 준비 사무실마저 폐쇄하고 관련 예산도 삭감해 버리는 등 ‘북한인권법’을 고사시키려 했던 이전 정부의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뜻도 있다.
‘북한인권법’ 제2조는 “북한 주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음을 확인하고 북한 주민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걸 국가의 책무라고 명시했다. 이런 법을 만들어 놓고 7년 간이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국회는 직무유기로 지탄받아도 싸다.
정부가 이번에 북한인권보고서를 일반에 공개하기로 결정한 건 국회의 직무유기를 더 이상 방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말 유엔 총회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으로 복귀한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 주민의 인권 유린은 눈 질끈 감고 모른 체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친북·반북의 진영논리로 따질 수 없는 인간의 기본권이자 민족 동질성의 문제다.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가 힘을 모으고 있는데 우리가 남의 일인 양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게 부끄럽다. 더 늦기 전에 정부와 여야, 종교계 등 국민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문제 해결에 힘을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