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성찬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
성경적인 의미의 성찬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기념(Remembrance)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기념하는 것이다. 우리는 떡을 떼며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보혈의 의미를 기억하며 되새게 된다.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들은 매우 상징적인 이 예식에 몸과 마음이 참여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 십자가의 보혈을 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둘째는 기쁨과 감사의 잔치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우리가 죄에서 자유를 얻고 하나님 나라에 참여한다는 기쁨의 경험이 된다. 성찬의 단어 ‘유카리스트(Eucharist)’는 ‘감사’를 의미하는 헬라어 ‘유카리스테오(εὐχαριστέω, thank)’에서 유래되었다. 부활에 대한 감사와 사망 권세를 물리치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찬양하는 잔치이자 축제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계 19:7-9)
셋째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와 나눔이다.
떡을 떼며 포도주를 함께 나눈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도의 교제를 의미한다. ‘나눈다’는 것은 영어의 ‘커뮤니언(Communion)’으로 헬라어로는 ‘코이노니아(Koinonia)’이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공동체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들과 한 몸을 이룬다는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6-17)
위의 세 가지 의미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성찬’의 진정한 본질적 의미다. 하지만 지금 한국 교회의 대부분의 성찬식은 첫 번째 의미인 ‘기념’ 의식만 실행되고 있다. 두 번째 감사와, 세 번째 교제와 나눔의 의미는 사실 거의 사라졌다. 성찬의 예식만 남은 것이다.
우리의 예배가 좀 더 성경적 본질을 회복하려면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재림과 소망의 의미를 가장 강력하게 상징하고 있는 성찬의 회복이 시급하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 혹은 본질적인 의미의 간과로 인해 약화 되었던 성찬은 수동적인 지금의 예배를 역동성의 예배로 이끄는 중요한 열쇠다.
성찬의 회복은 우리가 가진 초대교회의 유산을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예배가 더 이상 매력이 없고 무미건조하게 생각하고 있는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경험시켜줄 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적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경적인 성찬의 의미를 현대의 교회에도 다양하게 접목 시킬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할 때다. 세속의 물결로 인해 영적으로 점점 약해져 가는 교회가 새롭게 회복되기 위해선 예배가 좀 더 역동성을 갖춰야 하며, 상징을 통한 강력한 공동체 회복을 불러일으키는 성경적인 성찬의 회복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 세대의 젊은이와 청소년들이 예배를 단지 의례적인 예식이 아닌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예배의 갱신이 지금의 교회들에게 시급하다. 교회의 미래가 다음 세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교회의 갱신은 우리 가까이 있다. 예배의 변화 없이 교회의 갱신과 부흥은 없다. 그중 시급한 한 가지는 ‘성찬의 재발견’이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 1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