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 양자 삼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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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3. 하나님의 가족

최더함 박사

정리하면 하나님의 ’양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한 가족입니다. 오늘 이 사실을 사도 요한이 미리 선언하였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무엇보다 하나님의 양자가 된 하나님의 아들은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이미 창세전에 아브라함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받은 약속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함이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 9:7~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라”(갈 4:28, 31)

한편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구약시대 즉, 율법의 시대에서는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합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 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 3:23~26)

이 말씀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율법 아래에선 매인 바 된 ‘종의 신세’였지만 복음이 온 이후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의 가장 핵심적인 요건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요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며 천국을 상속받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계속해서 양자됨을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연관시켜 이 믿음을 가진 자녀를 그의 가족으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양자됨은 중생과 회심과 신앙의 결과로서 채택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양자의 삶의 증거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를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1) 성령의 증언

바울은 이 사실을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소개한 갈 4:4~7이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때가 차매 그 아들을 보내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유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4:4~7)

2)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의 증언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요 3:1~2)

특별히 요한은 종종 신자들을 매우 부모된 입장에서 매우 다정하게 ’자녀들‘ 혹은 어린 자녀들’이라 부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이 충만한 눈빛은 무엇입니까?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의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길일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그런 심정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어린 신자들을 바라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이해하십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3~14)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애정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납니다. 주님은 그의 제자들을 두고 ‘형제’(히 2:12) 또는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로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맏아들로서 우리를 동생처럼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큰 형이 됩니다.

3) 특권들

우리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시절엔 하나님 아버지와 원수 된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 6:9)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아들로서, 아버지의 상속권, 즉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엄청난 권리를 기반으로 당당하게 아버지께 간구의 기도를 드립니다. 필요한 것들을 달라고 요청하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청하며, 심지어 말도 안 되는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도 기도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알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아무런 반응이나 응답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 아버지는 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의 예배를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에 그의 예배를 하나님이 거절하신 것입니다. 예배함에 있어서 특이한 것은 하나님은 영과 진리 안에서(in spirit and truth) 드리는 예배를 원하시고 그런 예배를 드리는 자를 찾으시는데(요 4;24), 이런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드릴 수 없는 예배입니다. 왜냐면 성령님은 하나님의 자녀만 택하시고 그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특권 중에 가장 위력적인 특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심판의 때에 증명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심판의 때에 모든 사탄의 참소에 맞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악들을 변호하시고 우리를 보증하실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특권이 어디 있습니까? 이러한 특권을 지금 당신이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계속)

#최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