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가?
(1) 경건한 두려움을 갖는 태도
왜 사람들은 영적인 것, 영원한 것에 그렇게 무관심하고 썩어 없어질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에만 관심이 많을까?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인간의 가르침과 세상의 풍조는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그렇게 우습게 여기는 것일까?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롬 3:18)
지금과 같은 징계의 시대에 우리 모두가 강조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주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인식. 이와 같은 인식이 우리 안에 경건한 두려움을 만들어 낸다. (느부갓네살, 바벨론 포로) 하나님의 징계는 이와 같은 인식을 우리의 심령에 새겨 주고, 그 결과 우리 안에 경건한 두려움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이 경건한 두려움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 즉 회개를 일으키는 동력이 되는것이다.
(2) 절대 복종하는 태도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하나님의 위엄을 우리가 인식하게 되면 우리 안에 경건한 두려움이 일어나게 되고, 경건한 두려움은 반드시 하나님에게 절대 복종하는 삶을 낳게 된다.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본성이자 죄성은 바로 불순종이다. 사람들은 이 불순종 앞에 다양한 수식 어구를 붙인다. 합리적인 불순종, 상황적인 불순종, 불가피한 불순종. 그러나 불순종은 불순종이다.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본성이자 죄성은 바로 불순종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불순종의 이유는 인간의 교만함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죄성과 본성은 이 두 가지로 요약된다. “교만함과 불순종.” (창 3 장: 선악과 사건) 이와 같은 교만함과 불순종을 변화시킬 수 있는 치료제는 하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징계”다.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의 교만함을 꺾어 스스로를 낮추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불순종”은 곧 “죽음”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신 28:15)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이후의 고백.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조상들이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주의 명령과 주께서 그들에게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들이 그 나라와 주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였는데 곧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것의 열매를 먹고 그것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느 10:34-36)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왕들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그들이 우리의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하였느니라.” (느 9:37-38)
하루는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마침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읽게 됨. 그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이 양식과 물이 필요할 때에 그들을 영접하기를 거부.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느니라.” (느 13:3)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출 5:1)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출 5:2)
자신의 노예들이 믿는 신의 말을 바로가 얼마나 대단하게 생각했겠나? 바로에게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은 자신이 섬기는 수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으며, 자기 노예들이 섬기는 신이니까 그 신도 자기 노예나 다름없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 결과 바로와 그 백성들이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 할지, 그들은 곧 알게 되었다. (10 가지 재앙: 애굽의 신들에 대한 심판- 장자의 죽음)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출 7:4-5)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한다. 거기에 삶과 죽음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함으로 절대 복종한다. 이것을 알면 성경과 그 가르침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게 된다. 성경을 창조자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말씀의 저자이신 분의 주권을 이해하면 취사선택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는 복종만이 말씀에 대한 적절한 반응임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징계는 바로 이와 같은 회개의 동력이다. (계속)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윌버포스 크리스천 스쿨 교장)
#이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