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고향 향한 그리움을 詩에… 기독 시인 이옥녀 작가

교회일반
인터뷰
이상진 기자
sjlee@cdaily.co.kr
이옥녀 시인은 80이 넘은 연세에도 젊은 기운이 넘친다. ©이상진 기자

“나는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자신을 독자들에게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가?’에 대한 이옥녀 시인의 대답이다.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은 아닐 수 있지만,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이고 그 신앙에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이 ‘공평’이라는 요지의 단호한 대답이었다.

1939년생, 만으로 84세가 된 이옥녀 시인은 언뜻 보면 60대나 70대로 보일 정도로 구김이 없이 정정하다.

그녀는 어린 시절 1·4후퇴 때, 고향인 황해도 신계군에서 몰려오는 중공군을 피해 아버지와 월남했다. “원래는 우리 집에서 개성 쪽으로 한 50리 정도만 갔다가 전선이 회복되면 다시 돌아갈 요량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가산을 지키기 위해 고향에 남으셨고, 아버지와 함께 남하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전선이 후퇴하면서 그 길을 따라 계속 남하할 수 밖에 없었다고. 어린나이에 어머니와 생이별을 했고, 그녀는 “아직도 내 눈에는 고향 땅과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하다”라고 했다.

그렇기에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그녀는 ‘고향의 시인’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녀가 시를 쓰기 시작한 계기도 피난 후 온양에서 아동문학가인 이태섭 목사가 세운 ‘온양제일교회’를 다니고, 학교를 다니며 “거기서부터 시인이 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 작가는 “북한에서 함께 피난 나오지 못한 어머니와 나의 살던 고향을 기초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문단 데뷔는 1960년이다.

자신이 ‘고향의 시인이라고 불리우는 이유’에 대해, 그녀는 자신의 시집 몇 가지를 소개했다. ‘멈춰있는 물레방아’(2014년 코람데오)는 이 작가가 살던 고향에서 “어려서 초등학교를 가려면 걸어서 언덕을 넘어야 하는데, 냇물을 건너야 한다. 그곳에는 물래방아도 있었다. 그 때 어린 시절 학교로 가던 길, 경험했던 심상 그리고 고향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쓴 시”라고 했다.

시집 ‘임진강 철새는 오고 가는데’(2018년, 천산)는 “언제 임진강으로 여행을 갔다. 강 주위에 황새고, 어떤 새고, 여러 새들이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인간만 막혀서 못 가고 있더라. 그 강의 새들은 자유롭게 오고 가는데 ‘왜 나는 못 가는가’를 생각하면서 썼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김대중 대통령 때인가, 북한에서 농산물을 좀 팔아달라고 남한으로 내려 온 적이 있다. 1990년 쯤 되는 것 같다. 내가 이것을 팔아줬다. 그리고 이 사건을 소재로 시를 썼다. 시라는 것은 (인위적으로) 무엇을 만들어서 쓰는 것이 아니다. 경험한 사실 그대로를 쓰는 것”이라며 그의 시집 ‘북에서 온 감자를 먹으며’에 대해 설명했다.

이 작가는 그녀의 시론에 대해 “수필은 내가 느끼는 것을 그냥 그대로 쓰면 된다. 시와 소설과 수필은 장르마다 차이가 있다. 나는 수필과 소설은 길어서 싫다. 소설가는 시 한 편으로 소설 한 권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은 ‘소설 한 권’을 ‘시 한 편’으로 쓸 수도 있다. 시는 ‘함축성’있게… 이런 것이 차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남의 시를 모방하는 것은 사기 치는 것이다. 벌써 느낌이 다르다”라는 것과 또한 “시란 오랫동안 쌓아오는 것으로 훈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강조했다.

이 작가는 ‘기독교 문학’에 대해 “기독교 문학이 1960년대부터 시작했다. 사람 나이로 보면 회갑이다. 그런데 기독 문학이 아직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역량이 좀 부족하다”며 “기독 시인들은 신앙을 좀 더 공고히 하면서 그 가운데 얻은 지혜와 경험을 더욱 깊이 시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기독교 문학의 문제만으로 국한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국가에서 삼일절이나 광복절 같은 행사를 하면 ‘시인’들이 행사에 초청되어 시를 낭송했었다. 그 시대에는 시인들이 사회적으로 존중받았다”라며 “예전에는 버스나 전철에 가면 죄다 학생들이나 사람들이 책이나 시를 읽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시집이 작았다. 왜냐면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요즘에는 둘러보면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 폰만 보고 있다. 책 읽는 문화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라며 “또한 시인들이 교육적인 측면에서 시를 현대 시대에 맞게 학생들이 즐길 수 있도록 시를 잘 배포하는 것에 힘쓰고, 환경을 잘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시를 쓰는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신학을 공부한 목사’로서 그녀가 삶의 중요한 주제라며 인터뷰 중 몇 번이나 강조한 것이 있다. 그것은 그녀가 믿는 하나님이 ‘공평하신 하나님’으로 “하나님은 성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작가는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는데,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으신다. 여자와 남자, 남자와 여자가 공평하다. 누가 먼저고 나중이 아니”라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남녀를 공평하게 지으신 창조 질서를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권위주의적이고 유교적인 사회 안에서 여성들이 많이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다. 정치계, 경제계, 종교계 등등 여러 영역에서 그렇다. 어떤 목회자들은 여성은 강단에서 설교할 수 없다고 한다. 아직도 사회의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이 잘못된 사고들을 깨지 못하고 있다”며 “물론 최근에는 사회가 많이 변했다. 나는 아들도 키우고 딸도 키워봤다. 요즘에는 오히려 여성이 남성을 역차별하는 경향도 있더라. 이것도 안 된다. 남녀가 공평해야 한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했다.

그녀는 “나는 누군가가 여성을 무시하는 것을 못 본다. 나는 싸운다. 글로 행동으로 싸운다”며 “왜냐면 차별적인 분위기는 가정을 불화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런 불안정한 가정들이 많은 사회는 건강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나라가 혼란스럽다. 이런 문화들은 후손들에게 물려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래는 이옥녀 시인의 시 한수.

이옥녀 시인의 시, 연꽃과 물레방아 ©이옥녀 시인 제공, 기독일보 디자인 팀

△이옥녀 작가의 약력
'우리문학'으로 1990년 6월에 등단.
감리교신학대학교 석사목회학 박사, 감리교 신학대학 평생교육원 교수역임, 서울대학병원 원목 역임.
한국문인협회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한국기독시인협회 자문위원.
수상: 문예사조 제 5회 문학상, 한국기독교문인협회 공로상, 문예사조문학상 본상, 한국기독시인협회 문학상 등.

#한국기독시인협회 #이옥녀시인 #시집나의새둥지 #그옛날물레방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