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유민주주의 보편적 가치, 왜 중요한가

오피니언·칼럼
사설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 발간된 2023 통일교육 지침서에 문재인 정부가 삭제했던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란 표현이 부활했다. 또 북한이 핵 개발을 통해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 등이 강조된 것에 교계는 반기는 분위기다.

국립통일교육원이 14일 발간한 통일교육 기본방향에 5년 전 삭제됐던 ‘한반도 내의 유일 합법정부는 대한민국’이란 표현이 다시 들어간 건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문 정부는 지난 2018년 발간한 통일교육 지침서에 이 내용을 빼고 “1948년 남과 북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정부를 각기 수립하게 되었다”고 서술함으로써 북한을 체제가 아닌 별개의 나라로 인정하는 빌미를 줬다. 그런 표현이 법적 구속력을 지닌 건 아니지만 정부 스스로 정통성을 부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 정부가 이전 정부로부터 이어오던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기술을 빼고 대한민국 외에 북한의 존재를 합법적인 국가로 인정한 건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에 대비한 사전 정지 작업의 일환으로 의심될 정도였다. 남과 북 두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데 외국 군대가 주둔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체제와 북핵 개발에 대한 시각차 또한 극명하게 나뉜다. 2018년 지침서는 북한을 “노동당을 지도하는 최고 영도자의 1인 지배체제”라고 한 반면, 올해 지침서에는 “수령 중심의 1인 독재 체제이고 노동당에 의한 일당 독재체제”라고 기술했다.

북한을 ‘1인 지배체제’라고 했던 데서 ‘1인 독재’, ‘1당 독재 체제’로 바꾼 건 북한의 정체성에 대해 현 정부가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 정부가 ‘독재’란 명확한 표현 대신 ‘지배’라는 말로 순화시켜야 했던 이유와 사정이 무엇이건 간에 현 정부는 그걸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북한 3대 세습 정권을 ‘최고 영도자’라고 한 표현도 사라졌다. 문 정부가 왜 이런 칭송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1인 철권 독재자의 지배 아래 고통당하는 북한 주민을 생각하면 감히 입 밖에 내선 안 되는 표현들이다.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서도 문 정부는 2018년 발간한 지침서에 “군사적 우위를 확보해 대외적으로 협상 수단으로, 내부적으로 체제결속을 도모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올해 지침서는 “북한이 핵 개발을 통해 한반도 및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라고 바꿨다. 문 정부가 북한 핵 개발을 자위적 수단으로 인정해 준 것이라면 윤 정부는 북한 핵이 한반도와 전 세계를 향하고 있고 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한 것이다. 지난 정부의 안일한 인식이 결국 북한 핵 개발의 시간을 벌어주고 명분까지 안겨줬다는 점에서 지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걸 확실히 한 셈이다.

눈에 띄는 점은 ‘2023 통일문제 이해’의 경우 납북자 문제에 억류자 문제를 처음으로 추가했다는 점이다. 이 또한 문 정부가 줄곧 외면해 왔던 문제로 북한 인권 문제와 함께 현 정부의 관심과 해결 의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과 2022년에 두 차례 발간된 ‘한반도 평화 이해’란 기본교재는 올해부터 발간하지 않기로 했다. 제목에서부터 ‘평화’란 단어가 사라지자 일각에선 문 정부의 흔적을 지우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통일교육원 측은 헌법 4조에 규정된 대로 평화통일은 분명한 원칙이며 제목에서 ‘평화’ 용어를 뺐다고 해서 소홀히 하는 게 아니라며 일부의 의혹 제기에 선을 그었다.

‘평화’는 문 정부의 핵심 키워드였다. 그 ‘평화’를 바탕으로 집권 5년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고 ‘종전선언’을 밀고 나갔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말 뿐인 ‘평화’에 매달려 허상을 좇은 결과 한미동맹은 뒷걸음치고 안보체계는 무너졌다. 반면에 북한은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연일 미사일 발사로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막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교회연합은 지난 19일자 성명서에서 “문재인 정부가 삭제했던 ‘한반도 내의 유일 합법정부는 대한민국’이라는 규정이 부활한 것은 지극히 다행이고 환영한다”고 했다. 또 “지난 정부에서 북한을 체제가 아닌 별개의 나라로 인정한 건 아무리 선언적 의미라도 누워서 침뱉기”라며 “이런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정부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했다.

한국교회언론회도 “우리의 정체성과 북한 정권에 대한 정확한 시각을 가지고 정리된 것으로 나타나 다행”이라며 “통일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다. 우리에 대한 정체성이 모호하면 통일의 방향이 잘못될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통일교육지원법’ 제2조에 따르면 통일교육의 목적은 모든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민족공동체 의식, 건전한 안보관을 바탕으로 평화적 통일에 대한 공통의 인식과 태도를 형성해 나가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국민들에게 올바른 통일의식을 심어주고, 통일을 준비할 수 있는 실천 의지와 역량을 갖추기 위해 ‘통일교육지침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목적의 교육지침서가 통일을 환상으로 받아들이게 하거나 주관적 시각의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주는 결과로 나타나선 안 된다. 자유·인권·법치 등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담은 바른 통일 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