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가 부정선거를 추방하고 투명하고 깨끗한 선거문화 정착에 칼을 빼 들었다. 총회장 권순웅 목사 등 교단의 지도부가 중심이 돼 총회 각종 선거에 관행이 되다시피 한 부조리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선 건데 어떤 결실을 거두게 될지 주목된다.
지난 14일 총회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총회장 권순웅 목사는 교단 내에 묵은 부조리를 뿌리 뽑고 공의로운 총회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반드시 “부정선거를 추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정선거 등 교단 내 만연한 부조리가 교단과 교회의 미래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날 ‘샬롬부흥 클린개혁 성명서’엔 선거문제뿐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른 인사, 행정과 재정의 투명성 재고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날 권 총회장은 “입후보자는 총회 선거관리법을 준수해 주기 바란다” “금권선거 및 부정선거를 금한다”는 등 선거문제를 중점적으로 거론했다.
이날 총회장이 작심한 듯 밝힌 부정선거 추방 의지는 매우 비장해 보인다. 사조직의 각종 선거 개입을 단절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다른 누구보다 호소력이 있었다. 아마도 총회 선거과정에서 이미 경험했거나 겪었을 법한 일들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교단 내에서 부정선거가 근절되지 않는 원인 중 첫손가락으로 꼽은 게 각종 사조직의 선거 개입이다. 총회 부총회장을 비롯해 임원선거에 출마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사람들이 이들의 타깃이 된다. 각종 수련회, 세미나, 기도회 등에 강사로 초청해 후원금, 협찬비를 요구하는 게 관행화돼 있다. 결국, 이들이 부정선거의 몸통인 셈이다.
총회 내 각 단체들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이 돈 선거가 횡행하게 만든 주범이란 건 이미 어느 정도 드러난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건 이들이 요구하는 금품이 아닐 수도 있다. 자기들이 지지해 당선됐다는 걸 빌미로 총회 정치에 노골적으로 개입해 교단의 원칙과 질서가 허물어지는 게 더 큰 문제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의 총회선거는 과거에 비해 나아진 게 사실이다. 대놓고 돈을 주고받는 선거 풍토는 거의 사라졌다고 본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개선이 됐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감시의 눈을 피해 암암리에 금권선거가 벌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선거조직원이 선관위에 들어가 문제를 무마하거나 부정선거를 눈감아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선관위가 ‘눈뜬 장님’이란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교단 내 선거 부정이 이런 사조직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에서 출발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에게만 화살을 겨눌 순 없다. 예를 들어 당장 총회선거에 출마할 의사가 없더라도 일부 목회자들이 수련회나 세미나 강사로 초청받아 후원금을 내는 걸 꼭 초청자의 강요로만 볼 순 없다는 말이다. 그 자리에 초청받기를 원하는 목회자들이 줄을 설 정도라고 하니 이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후원금은 자신의 미래를 위한 일종의 투자인 셈이다.
또 이날 권 총회장은 “성범죄 관련자의 총회 활동을 불허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아무래도 JMS 정명석의 성 추문 파문을 의식한 조치로 해석된다. 총회장이 교단 내 목회자들에게 높은 윤리의식과 실천을 위한 주의를 환기시킨 것이지만 그냥 한번 해본 말은 아니다. 바꿔 말하면 성 비위 행위자나 과거에 전력이 있는 인사들이 총회 활동을 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는 뜻이 된다.
총회장의 의지와 말 한마디가 곧 법의 효력을 지니는 건 아니다. 지키는 사람보다 무시하는 사람이 더 많으면 울리는 꽹과리로 그칠 수도 있다. 교단 지도부 개혁 의지가 성공을 거두려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위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그 말에 동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고 오랜 부정의 관행과도 자연스럽게 작별하게 된다.
최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2023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한 결과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4%로, ‘신뢰한다’는 응답 21.0%에 세 배가 넘었다. 코로나 전인 3년 전 조사 때보다 10.8% 포인트나 더 하락한 수치다. 이는 국민 5명 중 4명이 한국교회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교회에 대한 일반 국민의 평가가 부정적이라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교회의 신뢰도가 점점 더 낮아지는 이유가 목회자의 도덕성과 윤리 문제와 결부돼 있다는 점이다. 조사 참여자들은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를 불투명한 재정사용(25.9%), 교회지도자들의 삶(22.8%), 교인들의 삶(14.3%), 교회 성장제일주의(8.5%) 순으로 꼽았다.
한국교회가 이런 일반 국민의 부정적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순 없다. 이런 시선들이 교회 성장의 정체 또는 교세 감소의 원인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합동총회가 ‘클린’ 개혁을 선언하며 목회자들의 부정 관행과 윤리 문제를 꺼내든 건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문제가 합동총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교단이 크든 작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문제의 본질은 거의 같다. 합동총회의 “부조리 근절”을 위한 개혁 드라이브가 교단뿐 아니라 한국교회에 큰 자극제가 되어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