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오늘 저희 전도사님께서 복음서 말씀 중에 마태 마가 누가의 복음서만 보면 예수님 공생애는 1년이라 볼 수 있고, 요한복음을 통해서 공생애가 3년이라고 하십니다. 둘을 종합하여 결국 예수님 공생애 기간을 3년이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왜 공관복음만 따져보면 공생애 기간이 1년일 수밖에 없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공관 복음이라는 게 어떤 부분이 공통된 관점인지, 요한복음하고는 어떤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도 정리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답변]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공관복음(共觀福音 - Synoptic Gospels)라고 칭하는데 반해 요한복음은 그와 구별해서 제4복음서라고 부릅니다. 우선 공관복음에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이 공생애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의 유월절 때 한 번뿐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은 세 번으로 나옵니다. 유월절은 당연히 일 년에 한 번이므로 예수님의 공생애는 3년이 옳습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차이점은 그 제작 경위를 알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아주 간략하게 설명 드리자면 먼저 네 복음서 모두 예수님 생전에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공관복음서가 먼저 기록되었지만 그래도 예수님 사후 거의 한 세대가 지난 후부터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은 너무나 생생하고 충격적인 체험이었습니다. 그분의 메시아 되심과 영생의 소망에 대한 다른 어떤 증거도 필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 그분과 십자가 죽음이 바로 복음이었습니다. 우리 죄의 형벌을 다 감당해 죽으셨기에 우리가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또 그분의 십자가 은혜 안에 들어온 모든 자는 영원한 참 생명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 부활에 대해 너무나 확고히 믿었기에 예수님만을 주인으로 삼아 죄로 타락한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하게 살 수 있었고 또 그로 인한 어떤 멸시 핍박도 견딜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 이처럼 역사적 사실이자 진리 자체였던 복음이 하루 속히 전파되어서 기독교 신앙과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를 확립하기 위해서 당시에는 성령이 강림하여 강력히 역사했습니다. 거기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직접 목격한 증인(eyewitness)들이 많았습니다. 구태여 주님의 가르침, 사역, 십자가 사건을 따로 기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증인들이 서서히 죽기 시작하자 십자가 사건도 차츰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하게 지어져 가자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가르침과 사역과 십자가 사건을 사실 그대로 일종의 전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 세 공관복음서입니다.
예수님의 공사역은 예루살렘보다는 가버나움을 근거지로 삼아 주로 갈릴리 지역에서 행해졌습니다. 주님의 사역을 중심으로 기록된 것이 공간복음인지라 자연히 예루살렘보다 갈릴리 사역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또 십자가 사건이 복음의 가장 핵심인지라 마지막 유월절 때의 예루살렘 사역을 자세하게 기록했습니다. 마가복음은 수난주간 기록에 약 반을 할애할 정도입니다.
마태는 유대인 독자를 상대로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이자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를 그리고 있습니다. 마가는 구약의 여호와 신앙을 모르는 로마인을 독자로 했기에 주님의 사역 그것도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강조되었습니다. 누가는 헬라 이방인을 독자로 삼아 사랑이 넘치는 인자로 오신 예수를 그리고 있습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은 세 공관복음보다도 또 한 세대 더 지나서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 사건의 산 증인은 더 이상 세상에 없고 복음을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전해 들어야만 하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거기다 교회에는 이단들이 침투해서 순전한 복음이 전파되는데 많은 훼방을 놓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하신 일과 십자가 사건에 대해선 공관복음이 이미 기록하고 있기에 이젠 그분이 누구였는지 어떤 일을 행했고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더 구체적인 해설을 새로운 세대에 해주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 주님의 인성과 신성 중에 후자에 대한 신학적으로 확실한 변증이 필요했습니다.
요한은 그래서 이미 공관복음에 기록된 내용은 거의 다 생략했습니다. 대신에 특별히 일곱 기적을 엄선해서 각 기적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인간에게 베푸신 특정한 은혜와 권능을 강조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 스스로 유대인들과의 신학적 논쟁을 통해서 당신의 신성을 변증한 내용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공관복음이 주님의 가르침을 주로 설교와 비유의 형식으로 기록한 반면에 요한복음은 주님과 유대인과의 토론한 내용을 기술했습니다.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유대 절기에 맞추어 예루살렘에 올라오신 예수님에게 신학적 시비를 걸었고 주님은 그 질문들에 답변하면서 당신의 당신 되심을 증거 했습니다. 요한복음은 그래서 각 절기가 갖는 의미에 맞추어서 메시아로서 행하신 기적과 역할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연히 요한은 예수님이 세 번의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오셨다고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요컨대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을 실제 일어났던 그대로 기록했다면,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이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주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변증하는 책입니다.
#박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