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이 각계각층에서 세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과학 천재 아인슈타인, 영화 천재 스티븐 스필버그,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가문, 석유재벌 존 록펠러,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세계 1등 부자 빌 게이츠 모두 유대인이다. 미국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4회 연속 유대인이 차지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스타벅스, 인텔, 델 창립자가 모두 유대인이며,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25%, 미국 전체 GDP의 20%를 장악하고 있는 부자 및 엘리트 집단도 바로 유대인이다. 하버드대, 예일대, 보스턴대 재학생 총합계의 82%가 또 유대인이다.
또 노벨 수상자의 22%가 유대인이다. 정말 경이로운 수치다. 세계 인구의 0.2%밖에 안 되는 민족을 세계 톱 1%로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탈무드』를 그 이유로 들고 있다. 유대인에게는 성경과도 같은 『탈무드』를 세 살부터 죽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읽는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탈무드』를 통해 경제 및 돈에 관해 공부한다. 소유와 행복, 쾌락과 선행, 고난과 휴식 등 삶의 가치관도 『탈무드』를 통해 정립한다. ‘도대체 『탈무드』가 뭐길래?’라는 질문이 쏟아질 법하다.
『탈무드』에 나오는 예화를 하나 소개한다. 세 명의 아들을 가진 어떤 농부가 죽기 전에 젖소 열일곱 마리를 물려주면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했다. “내가 죽으면 가지고 있는 젖소의 절반을 큰아들에게 주어라. 둘째에게는 그 나머지의 3분의 2를 주고, 셋째 아들에게는 그 나머지의 3분의 2를 주어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큰아들이 젖소를 유언대로 나눠 가지려다 보니 열일곱 마리를 반으로 나눌 수 없었다.
동생들은 형에게 한 마리를 반으로 나눌 수 없으니 반은 형이 양보하여 여덟 마리만 가져가라고 했다. 하지만 형은 아버지의 유언을 어김없이 지키는 것이 도리라며 아홉 마리를 가지겠다고 했다. 동생들은 이를 거부하였다. 형제들은 머리를 싸매고 의논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혜의 사람으로 알려진 랍비를 찾아갔다.
전후 이야기를 들은 유대인 랍비가 말했다. “내가 소를 한 마리 줄 테니 이것을 가지고 가서 나눠보시오.” 젖소 열일곱 마리에 한 마리를 합치니 열여덟 마리가 되었다. 그래서 큰아들이 아홉 마리, 둘째 아들은 그 나머지의 3분의 2인 여섯 마리를 가졌다. 그리고 나머지 세 마리 중에서 어린 막내아들이 3분의 2인 두 마리를 갖자 한 마리가 남게 되었다. 그래서 한 마리는 랍비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그때 랍비가 말했다.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때는 주어진 조건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그 조건 밖에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 『탈무드』의 예화는 주어진 조건이나 여건에서만 해결책을 찾지 말고 다른 시각으로 생각한다면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즉, 내부의 조건으로는 풀리지 않는 숙제를 풀려고 애쓰다가 절망에 빠지지 말고 외부로 눈을 돌려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유대인이 가르치는 지혜다. 우리 주님도 탈무드의 내용과 흡사한 가르침을 주신 적이 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벳세다에 이르렀을 때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요 6:5)라고 하셨다. 남자만 오천 명, 남녀노소 약 만 오천 명은 족히 되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디서 떡을 사서 먹일 것인가를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어디서?”라고 물으셨는데, 제자들의 눈은 자기들 내부의 조건밖에 보질 못했다. 빌립은 재빨리 계산을 해보고선 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서 조금씩 먹게 해도 부족할 것이라고 대답했고, 안드레 역시 아이가 가지고 있는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가지고 오면서도 그것이 그 많은 무리들에게 얼마나 되겠냐고 답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그래도 안드레는 오병이어를 들고 예수님께 갖다 드렸으니 빌립보다는 더 나은 믿음이라고 설교한다.
하지만 그래봤자 결론은 자기가 가지고 온 조건이 많은 무리들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하고 하잘것없기 때문에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발언을 한다. 물론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안드레가 예수님 손에 잡혀서 놀라운 기적을 발휘할 오병이어를 자발적으로 갖고 온 것이 아니라, ‘떡이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고 오라’(마 6:38)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따른 것임도 놓쳐선 안 된다.
빌립이든 안드레든 내부의 조건으로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지만 둘 다 예수님의 시험에 불합격하고 말았다. 자신들이 처한 당시 내부적 조건만 보았으니 불가능이란 답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게다.
“우리가 어디서?”라고 물으셨는데, 제자들에겐 정답을 보는 눈이 없었다. 자신들의 턱없이 부족한 조건만 분석하고 따져봤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정답을 제시하셨다. 마 4:19절에 나온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여기 “하늘을 우러러”란 말이 보이는가? 예수님의 방법과 비결을 배우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늘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불가능의 문제 해결이 자기 내부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해결할 수 없는 고민과 문제로 인해 낙심과 절망에 빠진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내부의 조건이 불리하거나 불가능해 보이면 보일수록 지금도 살아계셔서 불꽃 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그분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