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금 학교는 무법천지” 교사·학부모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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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라는 4천여 서울시민의 함성이 서울 광화문 세종로 일대에 울려 퍼졌다. 서울시의회가 시민들이 청구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수리한 후 의장이 이 폐지안을 정식으로 발의한 상태다. 이제 시민들의 열화같은 목소리에 시의원들이 응답할 차례다.

학생인권조례폐지범시민연대(시민연대)가 지난 10일 서울시의회 의사당 앞에서 주최한 집회엔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동반연), 전국학부모단체연합(전학연),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진평연)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여했다. 이들이 주말이 아닌 금요일 오전에 서울 한복판에 모이게 된 건 이날이 서울시의회 임시회 회기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단체는 집회 현장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2012년에 제정되어, ‘교육계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불리며 교사의 수업권 등 교권과 충돌을 일으키고 학부모의 보호양육권과 갈등을 조장하고, 학교 현장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마땅히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부모들이 대부분인 집회 참가자들이 조례 일부 수정이 아닌 완전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건 조례로 야기되는 폐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다. 이들이 지난해 8월 6만4천여 건의 서명이 담긴 조례 폐지 청구인 명부를 서울시의회에 제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서울시의회가 해당 청구안을 수리한 후 시간이 꽤 흘렀다. 지난 13일 서울시의회 의장이 이 조례 폐지 청구안을 발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 다음 절차는 소관 교육위 심의 의결을 거쳐 본회의에 상정하는 건데 아직 그 절차를 시작하지 못한 상태에서 3월 임시회가 폐회됐다.

학생인권조례 폐기 청구안이 이번 임시회에서 다뤄지지 않았다고 그대로 사장되는 건 아니다. 일부 의원들이 고의 지연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그렇다 해도 위법은 아니다. 지방의회는 수리일로부터 1년 이내에 주민청구조례안에 대해 심사·의결을 해야 하나, 필요한 경우 본회의 의결로 1년 이내의 범위에서 의결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절차에 하자가 없다고 다 적법한 건 아니다. 조례 폐지를 청구하는 게 시민의 권리라면 이를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건 서울시의회의 응당한 의무다. 시간이 지체할수록 피해는 커지게 마련이다. 시민의 뜨거운 목소리에 응답하지 못할 다른 사유가 법과 절차라면 그건 정당한 권리 행사라 보기 어렵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대신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성 소수자 차별금지 등 보수단체의 반발이 큰 일부 조항을 수정해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작성하고 있는 ‘학교구성원 인권 증진 조례안’ 초안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라는 표현이 사라지고 종교 과목 수강을 강요할 수 없도록 한 ‘양심과 종교의 자유’ 조항과 학생 소지품 검사를 금지한 ‘사생활의 자유’ 조항 등도 삭제됐다. 차별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존 조례에서 논란이 된 성 소수자 관련 내용을 뺀 건 아무래도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주장해온 보수단체의 저항을 의식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서울시의회 다수 의석을 가진 국민의힘이 이 초안으로 지난 2011년에 제정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대체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는 말도 나온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조례 폐지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시민연대와 또 다른 갈등의 소지가 있다.

서울시의회가 기존 조례에 동성애 관련 부분을 삭제하는 등 조례 일부를 개정하는 안을 준비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조례 폐지 청구안 가결을 대비해 새로운 조례 초안을 만들고 있는지는 지금으로선 어느 쪽으로도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만에 하나 기존 조례에서 논란이 된 부분을 일부 삭제 또는 수정하는 쪽으로 추진하고 있다면 과연 조례 항목 몇 개를 없애거나 고치는 방법으로 줄기차게 폐지를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누더기를 기운다고 새 옷이 되지 않는 이치다.

현재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곳은 서울시를 비롯해 총 6곳이다. 그렇다고 조례를 제정하지 않은 11개 광역시도에서 학생 인권 침해 사례가 속출하거나 문제가 발생할 조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시민연대는 이런 사실을 근거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후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배움의 전당인 학교가 ‘무법천지’가 되고 있다는 학부모들의 절규 또한 과장이나 엄살이 아니다. 방종과 자유는 다르다. 무질서와 권리 또한 전혀 다르다. 방종을 자유로, 무질서를 구분하지 못하고 당연한 권리로 여기면 사회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의회의 다음 임시회는 오는 4월 14일부터 5월 3일까지 일정이 잡혀있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이 조례 폐기안을 공식 발의한 이상 지금으로선 다음 임시회 본회의에서 다뤄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소관 교육위원회가 조속히 심의 절차를 진행하는 게 급선무다. 학생인권조례가 왜 학교와 교실을 붕괴시키는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지, 왜 교사와 학부모들이 ‘무법천지’가 된 학교에서 학생들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고 됐다고 절규하는지 서울시의회가 깊이 성찰하고 응답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