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선포한 후, 모두 일어서서 오늘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주일 이후의 한 주간 세상의 삶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결의는 설교 말씀 후의 결단과 더불어 시작된다. 설교가 하나님 말씀의 선포라고 한다면, 좀 더 강력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고 고백하고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영적으로 강력하게 예배를 마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의 결단은 영적 전쟁에 나가는 항전과 같은 느낌을 받아야 한다. 영적 능력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능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기 때문이다.
세 번째, 회중을 참여시켜야 한다.
말씀의 예전에서 회중을 참여시키는 것이 ‘강의식 말씀’이 자리 잡은 근대의 예배 역사 속에서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눈을 조금만 열어 청중들을 하나님의 말씀 속에 강력하게 인도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면 우리는 여러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과거 초대교회는 일부 성직자만이 설교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었으며 평신도도 설교할 수 있었다. 또한 근대에서도 회중을 설교 전후 참여시키려는 의지가 많았다. 로버트 웨버는 예배에서의 설교 갱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7-18세기 개신교 예배에서는 설교 후 거의 항상 회중들이 논의하는 시간이 있었다. 성직자들이 설교 후 강단을 떠나 성만찬 식탁 뒤에 서 있었고, 식탁 앞에서는 회중 전체가 참여하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런 관심은 19세기 부흥주의 예배가 도입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부흥주의 예배는 전도중심 설교를 강조했다. 오늘날 교회 대다수가 교훈적인 설교와 기독교 생활 설교를 강조한다. 따라서 회중 참여가 회복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예배 속에서 좀 더 역동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강력하게 선포되려면 말씀 속에서 예배자 모두가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강의식 설교는 아무리 집중력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잡념을 이겨내기가 어렵다. 예배에 참석한 청중들은 설교 시간이 담임목사의 영역이라고만 생각되는 순간 그 시간은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설교가 강의식 설교이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갱신적 논의가 있어 왔다. 이제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예배와 새로워지지 않는 설교 형식은 급변하는 다음 세대의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 본질을 새롭게 재정의하며, 설교를 담는 다양한 변화가 필요하다. 예배가 변하면 청중들이 기쁨으로 변하며, 설교가 변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삶이 변한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한국 교회 예배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는 설교 중심의 예배다. 설교 지향주의 예배는 그동안 한국교회 예배가 역동성을 사라지게 만드는 한 원인이 되었다. 젊은이들이 점점 예배에 흥미를 잃어가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고, 예배를 강론이나 설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그 딱딱함으로 인해 점점 감동을 주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설교 지상주의는 종교 개혁 시절 로마 가톨릭 예전의 타락과 더불어 말씀의 회복을 기치로 탄생한 영향이 크다. 루터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교 개혁자들은 예배에서의 ‘설교’를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쯔빙글리는 더 강력한 주장을 펼쳐 설교 이외의 모든 예배의 순서들을 없앴다. 하나님 말씀의 선포 이외의 모든 예배의 행위들 음악, 예복, 형상 등을 극단적으로 없애버렸다. 그는 설교 이외의 행위들을 심지어 이교도의 잔재라고 여겼다. 쯔빙글리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설교 중심적 편향적인 예배의 형태는 영국과 미국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으며 지금도 여러 교파와 교회들에 남아 있다.
예배의 중요한 성경적 요소들인 찬양과 기도, 말씀과 성찬 등이 유기적으로 예배 속에 녹아질 때, 예배는 보다 강력한 영적인 동력을 회복하게 된다. 하나님을 만나는 서로 다른 통로들이 더 많은 예배자들을 집중하게 만들고 깊이 있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찬양을 통해 감동을 주셨고, 기도로 더욱 깊이 대화할 수 있는 통로가 되게 하셨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다시 한번 결단할 수 있도록 하셨다.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은혜 주심을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