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추상미가 ‘블레싱 대한민국’의 워십시리즈에 출연하여 지난 3일 서울 신길교회(담임 이기용 목사)에서 간증했다.
‘블레싱 대한민국’의 워십시리즈는 블레싱대한민국 추진위원회가 주최하여 온라인 전도플랫폼인 ‘들어볼까’의 참여목사와 셀럽들이 짝을 이뤄 말씀과 간증을 전하는 행사로 2월 3일부터 3월 31일까지 24회를 진행한다.
배우 추상미는 워십시리즈의 11번째 참여자로 출연하여 산후 우울증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조명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 과거에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의 삶의 퍼즐들을 해석하고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나갈 수 있었던 간증을 전했다.
추상미는 “몇 년 전 아이의 출산 이후 겪었던 산후 우울증이 일반 우울증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출산 이후 2~3년 정도를 깊은 우울증의 단계로 들어갔다”라며 “나중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사건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 우울증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상처를 드러내셨다”라고 했다.
이어 “나의 아버지는 굉장히 유명한 배우셨다. 그런데 바쁘셔서 가정에 소홀하실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와 자주 다투셨고, 내가 14살에 과로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버지의 임종도 못보고 작별을 했다”라며 “아버지를 상실하는 사춘기를 통해서 내 안에는 많은 우울과 상실감과 불안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전에는 몰랐지만 내가 아이가 생기면서 우울증과 불안증으로 발현했다. 하나님은 내가 공인이자 연예인이 아니라 트라우마와 상실을 지닌 한 개인으로, 그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인 삶의 실존을 통해 만나주셨다”라고 했다.
그녀는 “하나님은 우울증이라는 시련의 과정을 통해 나를 만나주셨다. 그런데 그때는 이것이 전혀 해석할 수 없었다”라며 “그렇게 바라던 아이를 얻었는데, 왜 이런 고통이 찾아오는지 모른 채로, 자살충동과 죽음에 대한 묵상을 하며 통제불능의 상황에서 불면증으로 고통스러워 했었다”라고 했다.
이어 “불면증을 앓다가 하루는 깜빡 졸고 있었는데, 내가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마음에 쟁쟁한 울림 같은 것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다가왔는데, ‘내가 너의 아빠이고, 내가 너의 남편이다’라는 음성을 3번 들려주셨다”라며 “그런데 그 당시에는 남편도 예술 무대에서 바빴기에 혼자 육아를 하는 상황이고, 남편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기에 이런 상황들이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겹쳐서 ‘나는 좋은 엄마가 되지 못 할 거야, 결혼생활도 실패할지도 몰라’라는 불안감이 같이 찾아온 상황”이었다고 했다.
추상미는 “그런데 그 음성을 통해 하나님이 ‘나는 너가 그렇게 그리워하는 아버지이고, 너가 결핍을 느끼는 남편’이라는 음성으로 내 마음에 뻥 뚫렸던 구멍을 채워주셨다”라며 “나는 그 자리에서 한 2시간을 통곡했다. 하나님이 너무나 살아 계신다는 것을 그대로 느꼈다. 그 다음부터 주님과의 신혼기간이 시작됐다. 매일 5시간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시간을 보낸 것 같다”라고 했다.
이어 “그때는 남편과도 서먹했는데, 그 일이 있는 다음날부터 내가 갑자기 돌변해서 표정히 환해지고, 웃으면서 남편에게 친절하게 대하니까 남편이 오히려 무서워하더라”며 “나중에는 남편에게 모든 것을 나눴더니, 이것이 오히려 남편의 신앙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다”라고 했다.
또한 “나의 그전까지의 소망은 영화와 연출을 공부해서 ‘나도 유명하셨던 나의 아버지처럼 문화예술계에서 훌륭한 예술가가 돼서 이름을 날려야지’하는 욕망이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면서 그 욕망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라며 “주님을 만나면서 이 세상의 모든 욕망이 사라지고, 주님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이 실제가 됐다”라고 했다.
추상미는 그 후에 부르심을 찾기위해 기도했다. 그녀는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목적을 묻는 기도’했던 것에 대해 “우리의 인생에서 아무리 맞추려 해도 도저히 풀어 낼 수 없는 퍼즐 조각처럼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언약’이라는 방법으로 이 퍼즐의 전체 그림을 보여주셨다”라며 “그러면서 예술가로서 아버지의 훌륭한 DNA를 물려받게 하신 이유, 연예인으로 많은 미디어와 매체를 경험하게 하신 이유, 또 감독으로 많은 작품들을 만들게 하신 이유를 다 보여주시면서 이 마지막 시대에 각 시기마다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세상의 언어로, 복음의 가치를 작품 속에 녺여 내는 비전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추상미는 이어 콜링에 맞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기도를 하며 소재를 찾다가. 일주일 만에 지인이 일하는 출판사에 방문한 후에 그녀가 만든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소재를 얻었다.
타큐멘터리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한국전쟁 당싱 남·북한을 합쳐 10만 명의 전쟁고아가 발생했다. 남한의 고아들은 미국으로 입양을 많이 갔다. 북한 전쟁고아들은 당시 사회주의 동맹국에 흩어져 위탁 양육을 10년 정도 받고, 다시 본국으로 송환됐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남한의 고아들도 포함돼어 있었다. 그 중 몇 명의 북한 아이들은 그 당시 러시아에 의해 억지로 공산주의화가 됐던 폴란드의 한 땅끝마을로 가게 됐다. 거기서 북한아이들이 만난 폴란드 선생들은 2차 대전에 의해 전쟁고아의 피해자 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크리스천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 크리스천 폴란드 선생들이 북한 전쟁고아를 만나 8년 동안 양육한 이야기다. 그들은 북한 인솔교사의 눈을 피해,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기도문을 외우게 했다. 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어줬다.
추상미는 이에 대해 “이 아이들이 8년 후에 본국으로 송환됐다. 그들이 북한 지하교회의 그루터기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들이 살아계신다면 70대 노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며 “이는 폴란드 선생님들을 통해 전쟁의 고아들을 돌보신, 하나님께서 전쟁의 비참함을 직접 수습하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했다.
추상미는 영화를 준비하며 폴란드의 선생들을 인터뷰했을 때를 이야기하며 “내가 그들을 만났을 때, 폴란드 선생님들이 ‘혹시 통일이 돼서 혹시 그들을 만날 수 있다면, 내가 꼭 그들을 사랑한다고 전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이어 ‘그 아이들이 처음 폴란드의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까만 머리 까만 눈동자의 동양의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낮선 타국 어린아이가 아니였다. 우리들의 유년시절의 일부분 같았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이 단순히 불쌍해서 돌본 것이 아니라, 전쟁 고아였던 우리들의 유년시절의 일부분 같았기에 나의 유년시절을 회복하고 치유한다는 마음으로 그들을 돌봤다. 나의 분신 같이 돌봤다’라고 그들이 증언했다. 이보다 더 하나님이 주신 소재가 어디에 있을까 한다”라고 했다.
그녀는 이 영화를 개봉할 때 많은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배우를 하다가 북한과 관련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밝히며 “세속 언론에는 못 하고 기독교 언론에만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 영화는 독립 영화로 그 해에 3위를 했으며, 6만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했다.
추상미는 “아직도 이 작은 영화를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 이 영화 안에 하나님 나라를 심으셔서, 겨자씨 비유에 나오는 나무처럼 많은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는 것처럼 영화를 보시는 많은 분들이 회복되고 상처가 치유되고, 통일이나 민족의 상처뿐만 아니라 개인의 상처도 치유되는 그런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이 폴란드의 선생님들을 통해 복음의 가치를 세상의 언어로, 역사의 한 형태 전해지는 영화를 만들게 하셨다”라고 했다.
한편, 그녀는 남편과 함께 ‘야긴과 보아스’라는 기획사를 만들었다. 남편과 합작해 만든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공연을 소개하며 “많은 기독교 안의 청년들이 문화예술 컨텐츠가 결핍되어 있어서 힘들어한다. 청년들을 아우르고자 새롭고 트렌디한 형식의 공연을 만들어서 믿는 사람과 함께 믿지 않은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