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프랑스의 유명한 좌파 철학자이자 또한 유명한 동성애자이다. (푸코의 이론이 중요하기 때문에 3회에 걸쳐 푸코에 대해 논의하려 한다)
그는 평생, 방대한 자료를 발굴하여, 역사적으로 진리(truth)는 사회구성적으로(socially constructed) 또는 말하기(statement)로 형성된다고 주장하며, 시대에 따라 그렇게 형성된 지식이 어떻게 진리가 되어 사람들을 억압하였는가를 분석하였다. 그는 연구의 당연한 결과로 동성애 옹호와 소수자 인권운동을 하였다. 그의 획기적 이론은 한동안 역사, 철학, 문화인류학, 심리학, 페미니즘, 그리고 특히 동성애와 젠더, 퀴어 등 인간 섹슈얼리티 연구에서 막강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는 프랑스의 68학생 혁명을 지원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그의 연구 방법상의 허점과 과격한 논리 전개로 인해 수많은 격렬한 논란도 불러 일어켰다. 무엇보다 그간 그의 명성에 의해 은폐되어 왔던 바, 그의 사후에 그가 소아동성애 학대자였다는 추문이 폭로되면서, 그 이전부터 논란이 되어왔던 그의 비도덕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한 사람의 철학은 그 사람의 인격에 의해 영향받기 마련이다. 그의 이론은 현재 쇠퇴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학위논문 등 학문적 기초가 정신병리학이라는 점과 대학원과정에서 정신병원과 감옥에서 심리검사에 종사하였다는 점이 정신과의사인 필자의 관심을 끈다. 정신과의사가 정신장애의 원인과 증상과 치료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환자의 과거력과 현병력을 조사하듯, 푸코는 인간섹슈얼리티를 이해하기 위해, 지식의 고고학 내지 계보학(genealogy)이라는 역사연구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그가 사춘기때 동성애 행동으로 인해 아버지가 그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켰던 과거력과 관련있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대표 저술은 『광기와 문명』(1961), 『진료실의 탄생』,(1963), 『감시와 처벌』(1976), 『성의 역사』(1976-2018) 등이다. 이들은 프로이트의 『문명과 그 불만』과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푸코는 일찍이 1953년 니체를 읽고 감명을 받았으며, 자신의 성도착(동성애)도 단순한 픽션일 뿐으로 정신병이라는 죄의식을 가질 필요없다고 생각하였다. 이후 그는 사회적 슬로건이나 과학적 용어가 권력과 지배의 관계를 정당화하는 단순한 도구임을 입증해 보이려고 평생 헌신하였다.
그의 주요이론은 다음과 같다:
『광기와 문명』에서 푸코는 “광기의 궁극적인 언어는 이성의 언어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성, 합리성, 분별 같은 덕목은 단지 폭력적 억압의 가면(구실)일 뿐이며, 우리가 이성의 언어로 말할 때 그 배후에는 억압이 있다고 하였다. 특히 그는 정신의학이 “권력”을 가지게 된 사회적 기구로서 광기(정신병)를 가진 사람이나 동성애자들을 부당하게 감금하고 억압하였다고 비판한다. 예를 들어 18세기에 합리성이 진리가 되어 돈키호테 같은 “불합리한 행동”을 하는 것은 광기(madness)로 규정되고, 당시의 “도덕심” 이나 사회 안전에 대한 경계심에서, 권력이 그런 광기를 감시하고 통제하였다고 주장한다. 19세기에는 정신의학이, 전에는 자유롭게 동네를 돌아다니던 미친 사람을, 이제는 이성과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구속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위대한 감금“의 시대에서는 정신병원은 권력이 된다.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의 감옥도 신체를 구속하는 것 뿐 아니라 정신도 감시, 조사, 조작, 통제한다고 하였다. 이를 근거로 그는 감옥을 관료가 지배하는 근대사회의 축소판, 즉 소우주로 보았다.
같은 맥락에서 『성의 역사』에서, 서구는 오랫동안 동성애자들, 즉 “성적 타인들”이 주류사회를 위험에 빠트린다고 보고 악마화하였다. 즉 기독교와 계몽주의는 공통적으로 인간에게 보편적 본성(universal nature)이 있다고 보고 동성애를 자연(본성)에 반하는 도착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18세기경부터 정신의학이라는 지식이 사회적 권력이 되어 동성애자들을 정신병자로 다루어, 정신병원에 감금하였다.
그러나 푸코는 기독교나 계몽주의적 사고에 반대하였다. 그는 신은 죽었다는 니체를 따라 이제는 보편적 인간본성 같은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 도덕도 인간이 만든 것이며 실재하지 않는다 등등을 주장하였다. 반면에 그는 보편적 규범을 권력자의 사회억압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고 비판하였다. 즉 동성애를 “개개인의 독특한 본성”이라고 보았고. 따라서 그는 동성애자들을 "타인들“(others) 또는 ”추방된자"(the excluded)로서, 부당한 억압을 받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옹호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 법과 질서, 교회, 다수자, 전통적 주류 문화, 심지어 가족도 하나의 권력기관으로 ”위험하게 여겨지는“ 사람들- 소수자들을 억압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근대 이후 현대인은 광범위한 “감시당하고 통제되는” 분위기 속에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주체성은 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하여 소수자는 다수자에 의해 학대받는 피해자이며 순교자가 된다.
그의 핵심적 결론은 '근대화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푸코는 볼테르-에밀 졸라-사르트르를 잇는 프랑스 ”해방의 지성“의 마지막 후계자가 되었다. 그러나 푸코의 방법은 달랐다. 과거 계몽주의자들은 보편적 본성(universal nature), 즉 자연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신성한 인권을 지키려 하였지만, 포스트모더니스트 푸코는 계몽주의적 사고에 반대하였다. 그는 신은 죽었다는 니체를 따라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것 없다,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 도덕도 인간이 만든 것이며 실재하지 않는다, 등등을 주장하였다. 푸코는 이제 새로운 시대, 즉 “해체”의 시대에서는,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다수-소수 관계가 뒤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푸코는 동성애를 포함한 모든 섹슈얼리티, 즉 에로티시즘, 쾌락, 사랑, 열정 등등을“존재의 미학”의 차원에서 해석하였다. 존재의 미학이란 푸코가 사용한 용어로, 자신의 삶을 바깥으로부터 행동의 규칙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자발적이며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끌어올리는 기술(art)을 뜻한다. 즉 삶은 패션(fashion)이 된다.
이러한 모든 정치적 억압을 해방하여야 한다는 논리를 근거로 푸코는 동성애 옹호운동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좌파 인권운동가가 되었다. 이런 생각은 이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푸코의 급진 해방이론은, 60년대 반문화운동, 68좌파학생운동, 성혁명 등에서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었다. 또한 세계의 지성을 자극하였다. 푸코는 소수자를 우상화함에 따라 젊은이들은 당시 싹트고 있던 게이 하위문화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는 오늘날의 “woke” ideology의 창설자라는 평판을 듣는다. 이는 억압과 사회적 비정의의 효과를 의식하는 것의 중요성을 믿어, 현상태 유지에 도전하고 주변화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행동하는 사상을 말한다. (다음 칼럼은 푸코이론에 대한 비판)
#민성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