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한반도 통일 이후 북한에 교회를 재건하기 위한 논의를 재개했다. 지난 1995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북한교회 재건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했으나 그 후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는 점에서 북한선교에 대한 새로운 목표와 방향성 제고에 관심이 집중됐다.
지난달 24일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통일선교위원회가 서울 종로 여전도회관 리루이스홀에서 개최한 ‘북한선교를 위한 한국교회 원탁회의 준비 2차 모임’은 ‘통일 이후 북한교회 재건을 준비하는 한국교회가 하나의 선교전략을 짜야 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각 교단이 가지고 있는 선교 방안과 계획을 한데 모아 집약된 안을 도출할 때가 됐다고 본 것이다.
이 자리에서 안인섭 교수(총신대 신대원)는 한기총이 30년 전에 북한교회재건위원회를 결성하고 ‘북한교회재건백서’를 발간하는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던 걸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보수적인 교회가 주창하여 통일과 북한교회를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라고 평가했다.
1995년에 한기총이 주창한 ‘북한교회 3원칙’은 ①연합의 원칙: 북한교회 재건은 모든 교단이 협력해서 한다. ②단일교단의 원칙: 북한에는 하나의 교단을 세운다 ③독립의 원칙: 북한교회를 도와 그들이 교회를 재건하는 데 앞장서게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당시 47개 교단 13개 기관이 합의하는 등 한국교회가 연합의 정신으로 북한교회 재건에 동참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만 안 교수는 당시 합의의 한계점도 인정했다. 30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1995년과 2023년 사이엔 30년이란 세월의 강만 흐른 게 아니다. 역사적 상황의 차이와 변화는 그보다 훨씬 커 보인다.
당시 한기총은 보수진영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를 대변하는 위치였다. 지금의 위상과는 차이가 있다. 또 과거 한기총이 이런 주제를 독점할 수 있었다면 보수연합기관이 3분 된 지금은 비록 목표는 같을지언정 방향성이 분산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3기관이 이런 문제에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댈 동기 부여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변창욱 교수(장신대 선교역사)는 ‘선교지 분할정책’에 대해 “한 지역에 여러 교단 선교부가 들어가 사역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경쟁과 갈등, 선교비의 중복 투자를 피하고, 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선교지 분할을 협의하기 위해선 △북한에 하나의 개신교단을 세울 것인지, 분열된 교회들을 세울 것인지 △북한 전역을 분할해 교파별로 나눌 것인지, 아니면 단일 개신교단을 세울 것인지 등이 먼저 결정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변 교수가 언급한 선교지 분할정책은 1909년에 미국 남·북장로교, 호주장로교, 캐나다장로교 등 4개 장로교 선교부와 미국 남·북감리회 등 2개 감리교 선교부 등 6개 선교부가 한반도 선교에 임하기 전 체결한 선교지 분담협정을 말한다. 복수의 선교부가 한 지역에 몰릴 경우 야기될 수 있는 불필요한 대립이나 과열 경쟁을 막고 인적, 재정적 낭비를 최소화하자는 취지에서 각 선교부 간에 협의 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 협정이 각 선교부 간에 경쟁이 아닌 상호 존중과 양보 차원에서 잡음이 없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 협정을 ‘교계예양(敎界禮讓)’ 또는 ‘예양협정(禮讓協定)’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호주 캐나다 3개국의 장로교와 감리교 6개 교단 선교부 간의 선교지 분할 협정은 황무지나 다름없던 초기 한반도 복음 선교에 양질의 토양을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 그 뿐 아니라 8.15 해방 이후 나라의 재건 과정에서 한국교회가 전국적으로 고르게 부흥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비록 처음엔 각 선교부 간의 불필요한 대립이나 경쟁을 막고 중복을 피해 인적, 재정적 낭비를 줄이자는 취지였으나 큰 틀은 “하나님 나라 확장과 하나님 선교”였던 것이다.
변 교수가 이 문제를 꺼낸 건 과거의 이런 좋은 경험들이 북한선교를 준비하는 한국교회에 동기부여가 될 것이란 점을 강조하려는 뜻이었을 것이다. 다만 130년 전 외국 선교부가 했던 협약을 한국교회에 그대로 적용했을 때 그때처럼 좋은 결과를 얻게 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한국교회가 지난 수십 년 동안 해오고 있는 해외선교 사례를 봐도 각 교단 선교부 간에 실제 협약이 이뤄진 예를 찾기 어렵다.
어렵사리 협약에 이른다 하더라도 ‘북한교회 3원칙’의 핵심인 연합정신과 단일교단 원칙이 그대로 지켜질 지도 회의적이다. 북한에 교파주의를 심는 건 정말 걱정스럽지만 개교단, 또는 개교회의 선교 의지나 행동을 꺾거나 강제할 뾰족한 수가 안 보인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따라서 특정 지역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과열 중복의 비효율을 막으려면 북한선교 만이라도 한국교회의 다양한 의견과 방법을 조정 협의를 거쳐 하나로 집약할 책임있는 의사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말이 있다. 김정은이 미사일 도발을 일삼으며 핵무기로 위협하고 있는 마당에 언제 통일이 될지 알고 북한교회 재건 얘기를 꺼내느냐고 코웃음 칠 수도 있다. 그러나 통일은 어느 순간에 어떻게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통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문제다. 감이 떨어질 때까지 입 벌리고 누어있을 게 아니라 그날을 대비해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통일을 준비하는 건 적당한 때와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그 시기를 앞당겨 주시든 늦추시든 반드시 올 통일의 날을 기다리는 한국교회는 “하나님 나라 확장과 하나님 선교”라는 큰 틀 안에서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작이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