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는 2023년 새해를 맞이해 김낙환 목사(D.Min)가 저술한 논문 '우남 이승만 신앙연구: 신앙형성(Spiritual Formation)을 중심으로'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I. 서론
건국 대통령으로 우남은 이 나라를 미국과 같은 민주적 기독교 정신 위에 세워진 나라를 세우려고 고군분투였다. 우남은 한성감옥에서 1905년 여름에 저술한 『독립정신』의 마지막 부분을 쓰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쓰러진데서 일어나려 하며 썩은 데서 싹이 나고자 할진데, 이 교〔기독교〕로써 근본을 삼지 않고는 세계와 상통하여도 참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요... 마땅히 이 교로써 만사에 근원을 삼아, 나의 몸을 잊어버리고 남을 위하여 일하는 자 되어야 나라를 일심으로 받들어 영, 미 각국과 동등이 되리라"
즉 우남은 멸망지경에 도달한 대한제국이 부흥하여 미국이나 영국 같은 일등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독교를 받아들여 국기(國基)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유영익, 논문「세기적 전도자 이승만」, 월간 Jesus Army, 2011년 8월호, p.18-19).
1948년 7월 24일 74세의 우남은 중앙청 광장 연단 위에 올라가 초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한 뒤 연설을 시작하였다. “여러 번 죽었던 이 몸이 하나님의 은혜와 동포들의 애호로 지금까지 살아 있다가 오늘에 이와 같이 영광스러운 추대를 받은 나로서는 일반 감격한 마음과 일변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을 지고 두려운 생각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우남이 연설의 첫 문장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으로 시작한 것은 같은 해 8월 15일 있었던 정부 수립 기념 축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하나님과 동포 앞에서 나의 직무를 다하기로 일층 더 결심하며 맹세한다.”라고 서약하였던 것이다. 우남을 연구하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그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이도형,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p1. 조갑제는 이도형이 쓴 이 책의 원고를 읽고 인사말의 첫 머리를 위와 같이 시작하고 있다).
그 후 우남은 12년 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통치하면서 음·양으로 기독교 보급에 힘을 기울인 결과 -원래 모범적인 유교 및 불교 국가였던- 대한민국을 역사상 처음으로 기독교적 국가로 변모시키고 있었다. 이 대통령 집권기에 다져진 기독교 교회의 기반은 1960년대 이후 폭발적인 교세 신장의 도약대가 되었다. 그 결과 한국은 아시아 굴지의 기독교 국가가 된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우남을 한 사람의 기독교인, 신앙인으로 보려고 한다. 정치적 입장에서 그를 바라보는 입장을 버리고, 그의 신앙과 성품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그 분의 신앙과 성품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 신앙의 특성이 어떤 것이며 그의 신앙과 사상이 그의 행보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를 규명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우남을 정치인이 아닌 한 사람의 신앙(信仰)인으로 다루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신앙형성과 그의 사상이 한국교회와 역사에 미친 유형, 무형의 영향들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의 대부분은 전적으로 그 분의 기독교 신앙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할 것이다.
우남과 관련하여 많은 논쟁이 있기는 하나 분명한 것은 우남은 대한민국을 건국하신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젊어서는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치고 해방 후에는 제헌국회의 의장으로, 초대 대통령으로 국가 건국(建國)의 초석을 놓은 분이다. 그리고 그는 대한민국을 기독교 정신이 바탕이 된 미국과 같은 나라를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신앙의 선각자요, 선배가 되는 우남의 신앙을 연구하는 일은 오늘날 기독교인 된 우리들에게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한 시대를 이끌어간 한국 최고의 정치인으로서 한국의 교회와 기독교에 미친 그의 영향과 업적을 연구하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후학들에게 새로움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