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1만세운동이 오늘 한국교회에 준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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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올해로 104년이다. 전국의 교회들과 각 지자체가 코로나19로 중단됐던 3.1만세운동 기념예배와 재현 행사를 3년여 만에 다시 여는 등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104년 전 우리 민족이 일본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총 궐기해 일으킨 3.1만세운동은 종교 신분 성별 지역 등을 초월해 모든 한국인이 한마음으로 뭉쳐 일으킨 민족운동이라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이런 사례는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3·1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조선이 주권을 가진 자주 독립국임을 세계만방에 공포했다.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는 길선주 목사와 이승훈 장로 등 16명, 천도교는 손병희 등 14명, 불교는 한용운 등 2명이다.

정치 지도자가 아닌 종교지도자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일제의 침탈로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가 친일로 변질된 상황에서 변절하지 않은 민족 지도자를 찾기 어려웠다. 종교인 중에서도 유독 목사와 장로 등 기독교인이 많았던 건 3.1만세운동 전후에 일어난 일들이 거의 전국의 교회를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이뤄진 걸 보면 이해가 된다.

3.1 만세운동이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전개된 것 역시 그 밑바탕에 기독교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3.1만세운동으로 투옥된 사람들의 70~80%가 기독교인들이었다는 사실은 기독교가 일제의 모진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는 걸 증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장신대 임희국 교수는 “기독교의 3.1운동 참여는 단순 가담이 아니라 순교를 각오한 신앙적 결단이었다”라고 했다.

교회가 3.1만세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 건 당시의 교회가 정치적 영향력이 있거나 재정이 풍부해서가 아니다. 제국주의 탄압으로부터 나라와 국민을 구하겠다는 일념뿐이었다. 당시 장로교와 감리교 목회자들이 중심이 된 초교파적 연합운동이 한국기독교를 하나로 연결해 민족 전체의 독립운동을 가능하게 했다.

조선총독부의 서슬 퍼런 탄압이 반일에 앞장선 교회와 기독교인에게 집중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국에 산재한 교회들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보급하고 만세운동을 독려하자 일제는 이를 눈엣가시처럼 여겨 많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을 핍박했다. 당시 일제 헌병대가 조사한 3.1운동 관련자 종교별 상황에 따르면, 종교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3,426명을 차지했다. 비종교인까지 포함한 총 피검자 19,525명의 17.6%가 기독교인이었다.

반일 자주 독립운동에 앞장선 교회에 돌아온 대가 또한 실로 혹독했다. 일제가 불을 지른 47개 교회 중 제암리교회 방화 학살사건은 대표적인 만행의 사례로 손꼽힌다. 일본군과 경찰은 1919년 4월 15일 오후, 제암리교회당에 교인들을 모이게 하고는 문을 폐쇄하고 불을 지른 후 창밖에서 무차별 총격을 가해 33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이는 4월 5일 교회 인근 발안 지역에서 발생했던 만세운동에 제암리교회가 주도적 역할을 한 것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이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비쳐 볼 때 한국의 근대화 100년은 기독교를 따로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 기독교가 나서지 않았다면 3.1만세운동 등 당시의 애국 민족주의 운동은 불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와 한국교회는 외래 종교에서 진정한 민족의 교회로 탈바꿈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100여 년이 지난 오늘,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이런 역사적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를 후대에 전승하기조차 쉽지 않은 환경에 처해있다. 현행 역사 교과서에서 기독교에 할애된 비율이 다른 종교보다 현저히 낮은 3%에 불과한 건 약과다.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 및 각론에 이슬람교 관련 기술이 18페이지나 되고 불교도 6페이지를 할애한 반면, 기독교(개신교)는 가톨릭에 포함돼 ‘크리스트교’라는 이름으로 2페이지만 기술된 심각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연합은 27일 발표한 3.1운동 104주년 기념 메시지에서 이를 “역사 왜곡”으로 규정했다. 한교연은 “한국교회는 3.1운동을 애국 민족운동에 목숨을 걸고 선봉에 섰다”며 “이런 자부심과 긍지를 후대에 전승해야 할 책무가 있음에도 자라나는 세대를 교육하는 교과서에서 기독교를 홀대하고 있는 건 역사 왜곡이나 다름없다. 기독교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샬롬나비도 3.1운동 104주년 논평에서 “우리는 3.1운동에서 기독교가 했던 역할들을 우리 스스로 잘 인식할 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 잘 교육해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다”며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의 중고등학교 교육현장에서 3.1운동에서 기독교의 역할은 거의 서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와 공의라는 기독교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저항정신과 애국 애족 운동이 후세에 과소 저평가되는 현실은 안타깝고 한편 섭섭하다. 믿음의 선열들이 신앙 고백 아래 벌인 결연한 의지와 행동들을 한국교회가 잊어서도 잊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3.1절에 기념예배와 각종 행사준비로 분주한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이 점을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